“도시락·피자 드시고 힘내세요” 나눔 어벤저스가 떴다

입력 2021-06-18 03:01
마을쟁이 회원들이 지난해 1월 경기도 용인 북작북작도서관에서 노인 가구에 나눌 과일을 포장하고 있다. 마을사람들 제공

“사람은 혼자면 누구나 외롭잖아요. 바람에 흔들리는 식물에 흙을 돋아주면 잘 자랄 수 있는 것처럼, 사람도 곁에서 조금만 잡아준다면 적어도 쓰러지진 않을 수 있어요. ‘마을사람들’은 그런 흙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요.”

김주선 수원영은교회 부목사는 지난달 마을사람들 설립하기 전까지 하나님의 창고와 마을쟁이를 통해 마을 주민들을 지원해왔다. 용인=신석현 인턴기자

마을사람들 대표 김주선(46) 수원영은교회 부목사는 16일 교회에서 마을사람들의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을 돋우는’이란 부제가 붙어있는 마을사람들은 다음세대부터 노년세대까지 나이를 막론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지원과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는 사역단체다. 지난달 정식 출범한 단체에는 현재 30여명의 오프라인 회원과 100여명의 온라인 회원이 함께한다.

마을사람들은 이제 출범 2개월 차지만, 김 목사와 동역자들의 사역은 9년 전 시작됐다. 그는 ‘하나님의 창고’란 이름으로 남는 물건을 무료로 나누거나 교환하는 공유경제 플랫폼을 만들어 운영해왔다. 교회에서 봉사위원장을 맡은 그는 3년 전부터는 교회를 통해 어려운 지역주민에게 정기적으로 생리대, 과일 등을 나누는 나눔사역 ‘마을쟁이’로 사역을 확장했다.

마을사람들이 진행한 청년 대상 도시락 나눔 ‘밥바라밥’ 사역 포스터 모습. 마을사람들 제공

마을사람들 결성은 지난달 청년들에게 도시락을 선물하는 ‘밥바라밥’ 사역이 계기가 됐다. 김 목사는 청년들의 37%가 생활비 때문에 끼니를 챙기지 못한 적이 있다는 한 언론사의 기사를 보고 꾸준히 봉사와 기도 모임을 함께해온 동역자 3명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청년 100여명에게 도시락 12개를 나누는 사역을 함께 준비했다. 김 목사는 마블의 히어로 영화에서 이름을 따 ‘어벤저스’라고 불렀다.

그런데 지난 4월부터 대학 커뮤니티 등을 통해 사역을 홍보했으나 처음엔 신청이 저조했다. 김 목사는 “이유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우리가 단체 이름도 없이 ‘네 명의 엄마들’이라고만 적고 100자의 자기소개 글만 받고 조건 없이 나눔을 한다는 것에 의심하는 청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청년들이 자신의 가난을 입증해야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에 익숙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난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고 신뢰를 줄 수 있는 정식 단체를 설립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포스터에 따로 연락처를 남기지 않았는데도 도시락을 받은 청년들은 도시락 업체나 페이스북 등을 통해 김 목사를 찾아 감사 인사를 남겼다. 신청서에 자신이 받은 나눔을 꼭 주변에 베풀겠다고 약속하거나 도시락을 받지 않아도 좋으니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고 남긴 이들도 있었다.

1인 가구 대상 피자 나눔 ‘피자 받고 어깨 피자’ 사역 포스터 모습. 마을사람들 제공

마을사람들은 다음 달 11일까지 대학생, 취준생, 직장인, 기러기 엄마·아빠 등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피자 2판을 선물하는 ‘피자 먹고 어깨 피자’ 사역의 신청을 받고 있다. 김 목사는 감사 인사를 건넨 한 청년에게 “자취생에게는 피자가 비싸고 많이 남다 보니 먹고 싶어도 참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는 곧장 작은 크기의 피자를 파는 업체를 찾아 나눔을 마련했다. 경남 창원, 전남 순천 등 전국에서 신청이 들어왔다.

사역 비용은 김 목사를 비롯한 마을사람들 회원들, 사역의 의미에 동참하는 지인들의 후원으로 마련한다. 김 목사는 “헌금으로 진행하는 교회 사역은 조건과 기준을 명확하게 하는 게 중요하지만 마을사람들의 사역은 조건 없는 나눔이다 보니 뜻에 동참하는 사람들의 후원금으로 진행한다”며 “홍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후원금이 모일 만큼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시고 부족함 없이 채워주고 계심을 느낀다”고 전했다.

마을사람들이 사회의 약자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유를 김 목사는 세 가지로 설명했다. 그는 “우선 한국교회가 부흥하는 과정에서 한국 사회, 마을 사람들에게 진 빚을 이제는 갚아야 한다”면서 “그것은 예수님에게 진 빚을 갚는 일이자 동시에 교회가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지역사회에서 생존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목사의 바람은 앞으로 전국에 마을사람들과 같은 움직임이 생겨서 각자의 마을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라이프호프의 운영본부장이자 사회복지사이기도 한 김 목사는 나눔뿐만 아니라 심리상담, 돌봄 등 다양한 사역을 계획 중이다.

용인=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