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강요에 공부의 ‘공’자만 들어도 진절머리가 났고, 부모님의 잦은 다툼으로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고 책 속에 빠져들었다. 동화전집을 시작으로 헤르만 헤세, 톨스토이, 토마스 만 등 나이에 맞지 않는 책들을 섭렵하고 햄릿을 읽으며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며 고민했다. 좀 특이했던 나는, 야구공이 날아와도 ‘아, 날아오는구나’ 하며 바라보다가 안경이 박살나고 높은 창틀에 앉아 놀던 친구의 다리를 잡아당겨 떨어뜨려 다쳐도 사과 한마디 없이 그냥 교실로 들어갔다. 이런 행동을 하면서도 별 생각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 엄마처럼 의지하던 친언니가 결혼해 미국으로 떠나며 외로움과 우울함에 빠졌다. 밤에는 누군가 목을 조르는 심한 가위눌림의 공포에 떨었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 정신병원에 실습을 나갔다. 속을 뒤집는 약물 냄새와 환자들의 기괴한 행동에 나도 정신병에 걸릴 것 같아 결국 실습을 포기하고 병원을 뛰쳐나왔다. 나는 실패자라는 생각에 우울증이 심해지며 자살 생각까지 할 때 내 상황을 잘 알던 친구의 권유로 간증집회에 갔다.
기도를 받는데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며 내 마음을 다 알고 계신다는 말에 만신창이가 된 마음이 한순간에 회복돼 새로운 삶의 의욕으로 결혼도 했다. 그러다 연년생 두 아이를 기르며 몸도 마음도 집안도 엉망진창이 되고 남편과 관계도 악화돼 이혼 위기까지 갔다. 그래도 가정은 지키려고 가정 치유세미나에 참석하며 대성공을 거두자 내적치유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그러다 아들의 성적에서 시작된 부부간의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폭언으로 이어졌고,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 도망치듯 친정으로 갔다. 전국의 내적치유, 분노세미나, 비폭력 대화, 성경적 상담 등의 노력을 했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숨 쉬기도 힘들어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마음 속으로 욕과 저주를 퍼붓는 나를 보며 ‘내가 정말 미치는 건가’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러던 어느 날 TV에 나오는 신앙 간증에 큰 충격을 받고, 한 달간 400편의 간증을 3번씩이나 봤다. 무작정 한마음교회를 찾아 갔다. 목사님은 부활만 반복하는데도 성도들은 예배가 끝나면 ‘놀랍다. 감격이다’ 했다. 고민은 점점 깊어져 부활이 역사적인 사실인지, 예수님이 실존인물인지 직접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많은 책자와 자료들을 보니 예수님과 제자들이 모두 역사적 인물임이 확실했다. 특히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힐 때 도망갔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목숨을 버리면서 부활을 전했다.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고,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진짜 봤구나.’
나는 예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였다. 예수님을 무시한 나를 보며 하나님께서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생각하니 저절로 무릎이 꿇어졌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지 않아 삶 전체가 엉망이 됐습니다. 이제 제 마음을 오직 주님께만 드립니다.” 긴긴 어둠의 터널에서 벗어나니 몸과 마음에 기쁨과 힘이 솟았다. ‘나의 부족함 때문에 남편도 참 힘들었겠구나’는 생각에 사랑으로 다가갔고, 남편도 나를 위로해줬다.
환갑도 훨씬 넘기고 인생을 돌아보니 세상은 정말 허무하고 오직 바라볼 것, 붙잡을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밖에 없음을 새삼 느낀다. 내가 살 길은 오직 주께 돌아가는 것밖에 없다. 가망 없던 나를 끝까지 참고 기다리신 아버지 앞에 용서를 구하고 그 마음 더 알기 원하고 인도 받길 원하는 그 한 마음만이 내가 가질 마음이다.
송재순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