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

입력 2021-06-18 03:03
로완 윌리엄스 전 캔터베리 대주교는 세계의 그리스도인을 향해 “코로나 사태는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계속 서로에게 사랑과 신뢰, 힘을 나누는 길을 찾자”고 격려한다. 사진은 지난 5월 런던 템스강 인근의 ‘코로나19 희생자 추모의 벽’에 한 여성이 추모글을 남기는 모습. 하트 모양의 종이마다 코로나19 희생자의 이름이 적혀 있다. AFP연합뉴스

어떤 모임이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할 일을 다 하는 사람이 있다. 성경에서는 제비뽑기로 사도의 대열에 합류한 맛디아가 그런 인물이다. 사도행전 전반부에 등장한 맛디아는 가룟 유다를 대신해 사도가 됐다는 것 이외에는 후대에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사도행전 중후반부에 등장해 인류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사도 바울과는 대조적이다.

세계성공회 수장인 캔터베리 대주교를 지낸 저명 신학자 로완 윌리엄스는 너무도 평범하게 등장한 이 사도에 주목한다. “유다 같은 비극적인 삶, 바울 같은 열정적인 삶 곁에는 언제나, 반드시 맛디아처럼 묵묵히 그냥 그 자리를 지키는 삶이 있습니다.” ‘삶의 9할은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것’이란 영국 속담을 들어 그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거룩한 일이라고 치켜세운다. “내가 있는 작은 자리를 지키며 작은 변화를 만드는 일, 어디서든 작은 배려와 친절을 남에게 베푸는 일, 남에게 혼자가 아님을 믿게 해주는 일은 진정 위대한 일입니다.”


책은 지난해 윌리엄스가 케임브리지의 성 클레멘트교회에서 6개월간 목회하며 교회 소식지에 쓴 묵상글을 모은 것이다. 영국 왕립문학협회 회원이자 케임브리지대 모들린칼리지 학장을 지낸 저자지만 현학적 표현 대신 어렵지 않은 일상 용어를 사용해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격려를 건넨다.

코로나19로 실직 위기에 놓인 이들이 가장 두려운 건 뚜렷한 대책이 없는 상태로 마냥 기다려야 하는 상황일 것이다. 저자는 이들을 향해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 어떤 시간을 보내든 우리의 삶에 허비란 없다”고 위로한다. “살아있는 예수께서 모든 순간, 모든 곳에 우리와 함께 활동하기” 때문이다.

팬데믹 이후의 미래를 새롭게 그리기 위해 코로나19로 누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는가를 따져보고, 그간의 에너지 소비행태를 재고해 보자는 주장도 눈에 띈다.

팬데믹이 인류에게 던진 가장 어려운 숙제 역시 환경과 관련돼 있다. 저자는 전문가의 입을 빌려 앞으로 전 세계가 “지난 수십 년간 부유한 개인과 집단, 국가를 보호해왔던 방식을 고수하는 게 나은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환경을 인간 방식대로 계속 길들일 수 있다는 신화를 재검토 해야 한다는 의미다. 신학자인 저자의 해법은 명확하다. “상대를 파괴하지 않고서도 진리를 마주할 것을 신뢰하고, 코로나가 인간의 가능성을 파괴할 수 없음을 희망하며, 인류가 사랑 안에서 세계의 모든 생명의 안녕을 위해 새롭게 뜻을 모을 수 있음을 믿는 것”이다.

일상 영성으로 시작해 인류의 미래까지 논하는 신학자의 혜안이 돋보인다.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인류를 향한 따뜻한 위로뿐 아니라 인류 문명의 끝을 막기 위해 나 자신부터 변화해야 한다는 통렬한 지적 역시 새길 만하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