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서로 문 닫고 혼자인 밤에는
사는 것이 돌보다 무거운 짐 같고
끝내는 눈 덮인 설원 하나 곤두서서
더운 내 부분을 지나갑니다
무사한 날을 골라 반기는 그대
우리는 정말 친구인가요?
우리는 정말 시인인가요?
캄캄한 어둠이 우리 덮는 밤에는
제 십자가 무거워 우는 소리 들리고
한 사람의 시인도 이 땅에는 없습니다
고정희 시집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 중
43년의 뜨거운 생애를 살고 1991년 세상을 떠난 고정희 시인. 1975년 등단해 유고시집까지 모두 11권의 시집을 발표한 고정희는 한국 여성시의 방향을 바꾼 시인, 한국 여성주의 문학의 뿌리로 평가된다. 올해 30주기를 맞아 문학동네가 고정희의 첫 시집을 복간했다. 이 시집은 1979년 배재서관 판으로 처음 출간됐고 1985년 평민사가 재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