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입력 2021-06-18 03:02
팬데믹 시대엔 가족과 친구의 죽음을 맞은 이들의 눈물에 함께하며 서로를 위해 손 모으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진은 한 여성을 위해 주변의 그리스도인들이 손을 얹고 기도해주는 모습. 게티이미지

‘하마르티아’는 ‘자기도 모르게 짓는 과실’을 뜻하는 그리스어다. 이 단어에 어울리는 전형적 인물은 고대 그리스 작가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 주인공인 오이디푸스다. 올곧게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부지불식중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욕보인 악인이 된다. 작품의 무대인 테베가 전염병으로 오염돼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간 것도 패륜을 저지른 그 때문이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저자는 이 비극에서 인류가 코로나19 시대를 극복할 방안을 읽어낸다. “고전에서는 영웅의 실수로 온 공동체가 염병에 시달리지만, 모든 사람이 영웅인 이 시대에 역병은 모두가 감당해야 할 징벌이다.… 생태계의 질서를 살릴 무언가, 인류의 하마르티아를 빨리 깨닫지 않는다면, 우리는 마스크가 아닌 산소통을 메고 거리를 걸어야 할지 모른다.”

윤동주와 신동엽을 포함한 우리 문인의 삶과 글을 밀도 있게 연구해온 저자는 최근 펴낸 이 책에선 팬데믹 가운데 절망하는 이들을 시로 위로하는 데 집중했다. 책은 2016년 KBS 국제부 라디오에서 한 시 해설에 월간 ‘목회와 신학’에 2017년부터 2년 6개월간 연재한 기도시를 현재의 상황에 맞게 다듬은 것이다. 국내 시인의 작품부터 신학자 칼 바르트와 디트리히 본회퍼의 시, 문인 로버트 프로스트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글, 손양원 이동원 목사가 남긴 10가지 감사기도까지 다양한 글을 수집해 해설을 달고 매주 한편씩 읽을 수 있도록 편집했다.


기형도의 시 ‘우리 동네 목사님’과 윤동주의 ‘병원’에는 세간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우리 동네 목사님의 주인공은 기형도가 경기도 안양에서 실제 만났던 한 목회자다.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고 외친 그는 교회 집사 사이에서 골칫거리였다. 말도 어눌하고 아들의 폐렴을 기도로 고칠 능력도 없던 그는 학생들과 목사관 터에 푸성귀를 심고, 대장장이 망치질 보길 즐기는 괴짜로 낙인찍혀 결국 마을을 떠난다. 시인에게서 이 이야기를 직접 들은 저자는 비관적인 시의 결론을 이렇게 마무리 짓는다. “분명한 것은 어린 학생들의 마음과 대장장이의 마음에 작고 소중한 하나님의 교회가 지어졌다는 사실이다.”

‘병원’ 해설에서는 시인이 시집 제목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아닌 병원으로 지으려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저자는 ‘지금 세상은 온통 환자투성이’란 시구에서 그 이유를 찾으며 시의 마지막 문장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에 주목한다. “아픈 이들과 함께하겠다는 이 문장이야말로 윤동주 시의 핵심이며 이 재앙의 시대에 가장 필요한 자세”라는 이유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와 이동원 목사의 감사기도는 형식도 그렇지만 아들의 상실을 감사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내용 역시 비슷한 느낌을 준다. 두 아들을 죽인 범인을 양자 삼은 손 목사를 보며 저자는 “사랑과 총살, 감사가 도대체 어떻게 한 문장에 들어갈 수 있을까”라고 되묻는다. “뻘을 기어기어 일반 상식을 뛰어넘는 포월(匍越)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동원 목사가 차남을 먼저 보내고 쓴 ‘아들과 작별하며 드리는 열 가지 감사’에선 ‘상처 입은 치유자’의 면모를 발견한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그치지 않고 자녀를 앞세운 수많은 부모와 암 환자의 고통에 연대하는 이 목사의 글에서 최근 누이를 잃은 저자 역시 깊은 위로를 받는다.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는 약자를 돌아볼 것을 주문하는 시도 있다. 엘살바도르 군부에 저항하다 살해당한 오스카 로메로 신부와 미얀마 민주화를 지지하는 저자의 시가 그렇다. 저자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2000여 년 전 바울의 권고를 지금의 그리스도인이 기억할 것을 당부한다.

개인의 슬픔을 넘어 세상을 향해 손 모았던 여러 인물의 마음 씀씀이가 느껴지는 책이다. “이 책에서 해결책이나 특효약을 기대하지 마라. 가족과 친구의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의 눈물에 함께하며 팬데믹 시대를 극복하자는 마음을 모아 만든 것”이란 저자의 말처럼 역병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겐 서로를 위해 손 모으며 보듬는 자세가 절실하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