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 시행에 따라 국내 중소형 암호화폐 거래소의 줄폐업, ‘불량 코인’ 상장폐지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P2P(개인 간 금융) 거래소가 ‘특금법 사각지대’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 거래소는 금융 당국의 암호화폐 규제 압박에 틈새를 노린 영업을 이어가는 것이다.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암호화폐 P2P 거래소 L사는 본사 소재가 한국이 아닌 지중해 섬나라 ‘몰타’라는 이유로 지난 3월부터 시행 중인 특금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에 따라 L사는 자금세탁방지, 의심거래보고 등의 의무에서 비껴갈 수 있다.
이 회사는 개인 간 암호화폐 매수·매도가 직접 이뤄질 수 있도록 온라인 플랫폼을 제공한다. 대신 거래 1건당 0.5% 가량을 수수료로 가져간다. 쉽게 말해 개인 간 중고거래가 가능한 플랫폼 업체 당근마켓과 비슷한 개념이다. 다만 지난해 설립된 이후 거래량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몰타에 법인을 둔 이유는 한국의 강화된 암호화폐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다. 업계에서 몰타는 일명 ‘블록체인 선도 국가’로 통한다. 암호화폐 산업 발전을 위한 제도도 상대적으로 잘 마련돼 있다고 한다. 일례로 몰타는 2018년 블록체인, 암호화폐 규제를 전담하는 혁신기구를 설치하는 내용의 ‘디지털 혁신기구법’을 마련했다.
L사 관계자는 “수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P2P 거래소 설립 준비를 했었지만, 정부에서 계속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인정하지 않은 채 규제를 점차 강화할 것 같아 몰타로 눈을 돌렸다”며 “몰타에서도 정식 승인 절차를 밟았고 철저히 준비한 끝에 라이센스를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암호화폐 P2P 거래 서비스는 글로벌 거래소 바이낸스, 코인베이스, 오케이엑스 등에서도 제공하고 있다. 바이낸스와 오케이엑스도 본사가 몰타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해외 소재 암호화폐 거래소는 특금법 적용을 받지 않는 만큼 돈세탁 우려가 있고, P2P 거래 특성상 보안 문제 등으로 투자 위험은 상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L사에선 자사 에스크로(안심결제) 시스템을 통해 코인 판매자가 돈을 받고 코인을 전송하지 않는 ‘먹튀’ 가능성은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금법 여파로 국내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상장폐지되는 코인 거래가 이 같은 P2P 거래소에서 이뤄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L사는 타사에서 상장폐지된 코인이라도 자체 기준을 통과할 경우 플랫폼 내 거래를 허용할 계획이다.
금융감독원은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20여곳에 상장폐지 됐거나 유의 종목으로 지정된 암호화폐 명단 제출을 요구한 상태다. 최근 업비트 등 대형 거래소가 30개 가량의 코인을 상장폐지 및 유의종목으로 지정한 데 따른 것이다. 코인빗은 15일 밤에 코인 8개 종목의 거래 지원을 한꺼번에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코인들은 오는 29일까지만 출금 서비스가 지원된다. 애초에 암호화폐 상장이 거래소 자율이다보니 상장폐지를 할 때도 투자자에게 구체적인 근거가 제시되지 않는 실정이다.
금융위원회도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를 대상으로 본격적인 관리·감독에 나서고 있다. 금융위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전날부터 암호화폐 거래소 현장 컨설팅에 착수했다. 암호화폐 거래소 신고 수리 전 업계에 일종의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곤 하지만, 업계에선 사실상 사전 실사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