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의 한국 내 재산을 공개해 달라”고 낸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였다. 본안소송 때와 마찬가지로 중대한 인권침해와 관련해선 국가면제 원칙을 적용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51단독 남성우 판사는 지난 9일 일본 정부에 “재산 상태를 명시한 재산목록을 제출하라”고 결정했다. 실제로 압류 가능한 일본 정부의 재산을 확인하기 위해 재산 목록을 내라는 것이다.
지난 1월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부장판사 김정곤)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본은 원고들에게 각 1억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일본의 무대응으로 인해 그대로 확정됐고, 피해자들은 강제집행을 위해 법원에 재산명시신청을 냈다.
남 판사는 결정문에서 “이 사건의 강제집행은 적법하다”며 “강제집행 실시 후 발생할 수 있는 대일관계 악화, 경제보복 등은 외교권을 관할하는 행정부의 고유 영역”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외교적 판단이 아닌 법리만을 고려한 판단을 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에 대한 강제집행에 국가면제 원칙이 적용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주권국가는 다른 국가의 법정에 서지 않는다’는 이 원칙은 위안부 관련 사건에서 중요 쟁점으로 꼽혀왔다. 남 판사는 “인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 행위에 대해 국가면제를 인정하는 게 오히려 국가 간 우호관계를 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에 대한 국가면제 원칙 적용 여부는 법원에서 여러 번 뒤집혔다. 지난 1월 본안소송을 심리한 재판부와 재산명시 결정을 내린 남 판사는 같은 취지의 판단을 내렸지만, 3월에는 국가면제가 적용된다는 이유로 “이 사건 소송 비용을 일본으로부터 추심할 수 없다”는 결정이 나왔다. 2월 법관 인사로 새로 꾸려진 민사34부(부장판사 김양호)는 “소송 비용을 강제 집행하면 금반언의 원칙 등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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