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문화가 흐르는 ‘약속의 땅’… 세상과 교회 잇다

입력 2021-06-18 16:37
지난 23년간 한자리에서 기독교 문화공간으로서 지친 이에겐 쉼터가, 목마른 사람에겐 오아시스가 돼 준 프라미스랜드 내부 모습. 그리고 이곳의 스태프를 자처한 박혜인 간사와 박후진 대표 부부.

햇수로 23년. 부산 중구 대청동에 위치한 프라미스랜드가 ‘기독교 문화 공간’으로서 꾸준히 걸어온 시간이다. 주변 상점 간판이 수없이 바뀔 때 프라미스랜드는 지금의 자리를 오롯이 지켰다. 3000개 넘는 모임이 이곳을 거쳐 갔다. 이곳에서 개척 예배를 드린 교회만 12곳이나 됐다.

비결이 뭘까. 박후진 프라미스랜드 대표는 “하나님께서 여길 운영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대표의 아내이자 그와 함께 사역을 하고 있는 박혜인 간사 역시 “우린 그저 스태프일 뿐”이라며 “23년간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필요를 채우셨다. 하나님께서 늘 여길 지키고 있으라는 것 같다”고 말했다.

15년 전 프라미스랜드에 방명록을 남겼던 학생이 중년이 돼 다시 방문해 글을 남긴 모습.

지난달 29일 찾은 프라미스랜드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머금고 있었다. 한쪽에 모아둔 수십 권의 방명록은 한 편의 역사책이었다. 색이 바랜 겉표지를 넘기니 빼곡히 적힌 글들이 반겼다. 누구는 일기처럼 글을 써 내렸고, 누군가는 편지처럼 글을 남겼다. 십여 년 지나 다시 프라미스랜드를 방문해 자신이 썼던 방명록 밑에 글을 쓴 이도 있었다. 박 대표는 “한자리에 오래 있다 보니 ‘아직도 있네’ 하며 종종 추억을 찾으러 오는 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프라미스랜드는 1998년 12월 문을 열었다. 서울에선 ‘민들레영토’가 막 유행하던 때였다. 부산 동광교회 김승학 장로와 최정희 권사가 기독청년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보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박 대표는 “이 주변이 극장가가 있어서 유동인구가 많았다. 학생들도 많았는데 이들이 쉴 곳이 그리 많지 않았다”며 “지금이야 커피숍도 많아졌지만 그땐 정말 없었다”고 전했다.

박 대표는 1년여 뒤인 2000년 자원봉사자로 프라미스랜드에 발을 들였다. 그는 “그때 제 나이가 서른이었으니 저도 기독 ‘청년’이었다”며 “제가 처음 왔을 땐 테이블이 3개 정도 있었고 커피 자판기가 하나 있었다. 가운데에 커다란 스크린을 놓고 여기다 찬양 집회 영상을 틀었는데 그런데도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다”고 말했다.

프라미스랜드는 수능시험이 있는 날이면 청소년들을 초청해 무료로 피자와 통닭 파티를 열었다. 수업 끝나고 편하게 들르는 이도 있었고, 동아리 전시회나 일일찻집을 이곳에서 하기도 했다. 학생들에겐 그야말로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부산 지역 교회에서도 벤치마킹하러 많이 찾아오곤 했다.

그러나 늘어나는 관심과는 별개로 운영은 점점 힘들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프라미스랜드는 공간을 찾는 모든 이에게 커피값을 받지 않았다. 가격표를 마련해놓긴 했지만 실제로는 헌금 형태로 받았다. 대관료 역시 마찬가지였다. 손님 마음이 가는 만큼, 손님이 낼 수 있는 만큼만 받았다. 박 대표는 “중간에 커피를 팔기도 했지만 제가 대표를 맡고 나선 모두 헌금제로 바꿨다”며 “그 원칙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프라미스랜드는 2003년 사라질 뻔한 위기도 겪었다. 커피체인점이 들어서고 교회 안에 교육관이나 비전센터 등이 생기면서 기독청년들이 갈 곳이 많아졌다. 동광교회의 지원도 끊기면서 위기가 왔다. 박 대표는 그런 프라미스랜드를 홀로 짊어졌다. 그가 대표가 된 시점도 이때다.

혜인 간사가 박 대표를 만난 건 그가 대표가 된 지 5년 정도 흐른 뒤였다. 혜인 간사는 “그때 남편은 너무 지쳐 보였다. 그저 약속의 땅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을 갖고 견디고 있는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남편에게 여길 접고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더니 ‘그럴 순 없다’고 하더라”며 “그럼 여길 더 건강하게 만들자. 같이 해보자고 했다”고 말했다.

프라미스랜드는 혜인 간사의 합류로 2막을 맞았다. 그는 프라미스랜드를 세상과 교회가 소통할 수 있는 장으로 만들었다. 혜인 간사는 공연계에서 오래 일한 프로였다. 때문에 바깥 문화를 잘 알았다. 박 대표는 기독교 문화를 잘 알았다. 혜인 간사는 그때를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이렇게 균형을 맞추시는 게 아닌가 싶다”고 웃었다.

박후진 대표가 현재 프라미스랜드에서 전시 중인 박형만 작가의 성경필사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다시 조금씩 프라미스랜드에 생기가 돌았다. 기독교인만 찾던 공간, 청년만 찾던 공간에서 모두가 올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리모델링도 했다. 공연도 가능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혜인 간사는 “누구나 편히 오는 곳이 됐으면 했다. 세상의 수많은 나그네들이 쉼을 얻고 가는 곳이 되길 바랐다”며 “예산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온천교회를 통해 새 단장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프라미스랜드는 세상과 교회를 잇는 다리로서 묵묵히 그 길을 걷고 있다. 20년 전과 마찬가지로 찾아오는 이를 반갑게 맞이하며 약속의 땅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다. 박 대표는 “아내와 함께 입에 단내가 나도록, 힘이 다하도록 섬겼던 것 같다. 프라미스랜드가 언제까지 존재할지는 모르지만 이 자리에 남아 있는 한 하나님께 쓰임 받는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혜인 간사는 “늘 하던 대로 지금처럼 계속할 생각”이라며 “많은 분들이 프라미스랜드를 부담 없이 쓰기 바란다”고 전했다.

부산=글·사진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