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흰색 글로 인용 표기까지… 표절률 낮추기 위한 꼼수

입력 2021-06-16 04:02
카피킬러 시연 화면. 카피킬러 홈페이지 캡처

대학원생 최모씨는 지난 3월 석사학위 논문을 작성한 후 지도교수로부터 “15% 미만의 ‘카피킬러’ 표절률 결과서를 함께 제출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카피킬러 검사 결과 최씨의 논문 표절률은 18%였다. 최씨는 “6개 어절이 같다는 이유로 표절률이 높게 나와 (논문을) 제출조차 할 수 없었다”고 15일 말했다.

결국 최씨는 표절률 수치를 낮추기 위해 억지로 비문 혹은 번역체로 만들거나 문장을 삭제하는 등 불필요한 첨삭을 거쳤다. 이는 대학에서 카피킬러를 논문 통과의 절대적 기준으로 삼게 되면서 나타난 부작용의 대표적인 사례다.

카피킬러는 논문 유사도 검증 프로그램으로 표절률을 계산하는 시스템이다. 문서를 업로드하면 카피킬러가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베이스 자료들과 비교해 6개 어절 이상 일치 시 ‘표절’로 인식한다. 전체 문장 수 대비 표절로 의심되는 문장 수를 따져 ‘표절률’을 ‘%’로 나타낸다.

카피킬러의 맹점 탓에 수준이 떨어지는 논문도 양산되고 있다. 카피킬러는 논문 본문 문장 뒤에 ‘(홍길동, 2019)’와 같이 내주 인용표기를 하면 해당 문장을 표절로 인식하지 않는다. 출처를 표기했기 때문이다. 논문 저자로선 내주 인용이 표절률을 낮추면서 분량을 채울 수 있는 방식이 된다. 실제 한 대학 관계자는 “카피킬러 도입 이후에는 표절률만 낮추면 되기 때문에 내주 인용을 아무렇게나 덧붙이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국민일보가 논문 1만건의 교차율을 검증한 결과 다른 연구 자료를 무려 275회나 내주 인용한 논문도 있었다. 대학 내 연구 윤리 수업에서는 1개의 연구 자료를 인용할 때는 한 논문에서 5회 미만으로 인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교육부 산하 연구윤리정보센터는 “표시를 했더라도 인용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면 표절”이라고 설명했다. 이 설명대로라면 해당 논문은 사실상 ‘베껴쓰기’로 봐야 한다. 하지만 카피킬러 표절률은 30%대로 비교적 낮았다. 해당 논문은 대학원 박사 학위 심사를 통과했다.

카피킬러의 표절률을 낮추기 위한 ‘눈속임’도 등장했다. 인용표기를 바탕 색깔인 흰색으로 하는 방식이다. 육안으로는 인용표기 구별이 힘들어 인용 없이 직접 쓴 문장으로 보인다. 반면 카피킬러는 해당 글씨 색과 상관없이 인식해 표절률을 검사한다. 인용을 많이 한 경우에도 카피킬러는 표절이 아닌 것으로 본다. 만약 지도교수가 꼼꼼히 보지 않고 카피킬러 표절률로만 논문을 심사한다면, 짜깁기 논문은 문제없이 통과할 수 있다.

교육 당국도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연구 부정 문제는 저자 양심에 맡기는 것 외에 뚜렷한 해결책은 없는 실정이다. 2013년 카피킬러 전면 도입을 앞두고 학계 간담회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당시 ‘논문 표절 검사를 소프트웨어로 하면 교수들의 직무유기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는데, 결국 교수들은 태만해졌고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해야 하는 논문 검증은 소프트웨어가 대신하게 됐다”고 한탄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