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하지 마라. ‘이렇게 정성껏 준비했는데 포장지도 안 뜯어보다니….’ 창작자가 그대에게 거는 기대는 선물이 아니라 금물이다.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이소라의 노래 ‘바람이 분다’ 중) 시청자의 기대감은 PD의 부담감이다. 예능은 정글이다. 그 안에선 늘 바람이 분다. 그 바람에 몸을 맡겼다가 확 뜨는 수도 있지만 훅 가는 수도 있다. 한때는 탄성에 가까웠던 노래가 탄식으로 변하는 건 시간문제다.
이소라의 사랑노래는 끝나지 않았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바람에 흩어져 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간다.” 배우가 관객을 원망할 때야말로 배우가 무대를 떠나야 할 시점이다. 관객은 배우를 탓하지 않는다. 새로운 배우가 새로운 추억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배우가 분장을 지울 때 관객은 기억을 지운다.
한동안 끝내주던 사람이 한순간에 끝나버리는 일. 이런 황당한 시추에이션은 예능이나 드라마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종종 벌어진다. 루마니아에서 온 뱀파이어 일행의 좌충우돌 한국체류기 ‘안녕 프란체스카’(MBC 2005-2006)는 노도철PD의 판타지 시트콤이다. 여기에 등장한 안성댁(박희진)이 이런 상황을 만난다면 아마도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특유의 억양으로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이런 퐝당한 시츄에이션….”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 찰리 채플린은 이 문장의 주어로 인생을 택했다.(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종합오락채널 tvN은 브랜드캠페인 ‘즐거움엔 끝이 없다’를 프로그램 사이마다 끼워 넣는다. 예능의 목표를 여덟 글자로 압축할 때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문구다. 하지만 TV 켤 시간조차 없이 하루하루가 힘겨운 사람들에겐 ‘즐거움엔 끝이 없다’보다는 ‘괴로움엔 끝이 있다’가 차라리 더 희망적인 슬로건일 것이다.
하루가 낮과 밤으로 구성되듯이 한때 어느 분야에서 ‘끝판왕’이었던 사람들의 플레이리스트엔 두 개의 팝이 병존한다. 하나는 카펜터스의 ‘톱 오브 더 월드’(Top of the World) 또 하나는 스키터 데이비스의 ‘디 엔드 오브 더 월드’(The End of the World)다. 예능계 종사자들에게 최근 20년 대한민국 시트콤의 톱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거침없이 이 사람 이름을 댈 가능성이 크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김병욱 PD. 일단 정량평가에서 추종을 불허한다. 가장 많이, 가장 오래 시트콤을 연출했다.
MBC 라디오 PD로 입사(1986)한 김병욱의 첫인상은 온유한 도시 청년이었다. 스페인어를 전공했는데 누가 퍼트렸는지 필기시험 수석이라는 소문도 살짝 돌았다. 소리만으로는 성에 안 찼던지 SBS가 개국하자 ‘운동장’을 TV로 옮기더니 시트콤 장르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주병대 PD에게 물려받은 ‘LA아리랑’(1995-2000)을 필두로 ‘순풍산부인과’(1998-2000),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2000-2002), ‘똑바로 살아라’(2002-2003), ‘귀엽거나 미치거나’(2005)를 잇달아 히트시켰다. 그리고는 MBC로 금의환향한다. 재입사한 게 아니라 외주제작사를 통해 MBC채널로 그의 작품이 방송됐다는 얘기다.
몸값 이름값 제대로 증명하면서 ‘거침없이 하이킥’(2006-2007) ‘지붕 뚫고 하이킥’(2009-2010)처럼 글자 그대로 하이킥을 날렸지만 tvN에서 방송한 ‘원스어폰어타임 인 생초리’(2010-2011), ‘감자별 2013QR3’(2013-2014)과 MBC에서 방송한 세 번째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2011-2012)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김병욱의 시트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생명 연장의 꿈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생명을 연장하려면 먼저 생명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시트콤은 시추에이션(상황)이 코미디와 결합한 것이다. 시추에이션의 특성은 캐릭터의 일관성과 상황의 가변성이다. 일관성에서 앞의 한 글자를 빼면 무엇이 남는가. 관성이 된다. 지속 가능한 재미가 유지되려면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관성이 타성이 되고 타성이 원성이 되기 때문이다. 익숙한 재미의 보증수표는 부도수표가 될 위험을 늘 안고 있다. 예측을 불허하는 사고의 탄력성, 시의성과 결합한 융통성이야말로 시트콤의 생명력이다.
영리한 김병욱이 그걸 모를까. 시청자가 그의 이름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시트콤이 ‘너의 등짝에 스매싱’(2017-2018 TV조선)이다. 자막에서 그의 직함은 크리에이터로 나온다. 제목은 몹시 공격적이었으나 식단은 매우 수비적이었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박해미와 ‘순풍산부인과’의 박영규 권오중까지 캐스팅했지만 그가 이끄는 사단의 크리에이티브(창의성)는 시청자에게 더이상 먹히지 않았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자꾸 먹으면 질리기 마련이다. 기대했던 팬들에겐 상식보다 식상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엉뚱한 비교지만 임영웅을 트로트 가수로 한정 지을 수 없듯이 김병욱을 시트콤PD로 묶어두기는 곤란할 듯하다. 본인도 예전 인터뷰를 통해 “시트콤이란 방송사의 분류에 따른 것일 뿐이다. 드라마와 시트콤이 무슨 차이가 있겠나. 난 똑같은 걸 한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드라마 아닌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섣불리 장르를 나누는 게 위험하단 얘기다. 브랜드는 흔히 상표로 번역하는데 나는 상상력과 표현력이 상표(브랜드)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본인으로선 자랑스러울 수도 있고 어깨가 무거울 수도 있겠으나 김병욱 시트콤은 드라마와 예능을 아우르는(버무린) 새로운 장르로 불러도 무난할 듯하다.
화제가 없으면 존재도 없다는 건 이 세계의 철칙이다. 그의 시트콤은 엔딩으로 향해갈수록 화제를 모은 바 있는데 그 이유는 충격적 결말 때문이다. 놀람의 종류는 두 가지다. 경이로움과 경악을 금치 못함. 진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명하는 시청자가 바라는 건 대체로 흐뭇한 마무리다. 해피엔딩을 기대했던 시청자에게 주인공의 죽음은 그야말로 뜬금포일 가능성이 있다. 시청자는 욕을 하는 것 같지만 실은 요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욕을 한다, 욕을 한다, 욕을 한다, 세 번만 반복해보면 그들이 요구하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김PD는 그 강력한 요구에 왜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까.
연출은 섬세했지만 고백은 섬뜩했다. “‘지붕 뚫고’라는 제목을 지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어떤 사람이든 성장하면 마음속에 뚫을 수 없는 지붕을 갖는다. 자신이 돌파할 수 없는 한계 같은 건데 나는 내 지붕을 못 뚫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세상을 벗어나 다른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한없이 온순하게만 보였던 그는 마지막 순간에 시청자와 타협을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색깔을 관철했다. “난 비관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그 본성을 꾹꾹 누르고 지금까지 작품을 만들어왔던 거다. 염세적인 세계관을 갖고 웃기는 이야기를 하느라 고생했다.”
MBC에서 ‘논스톱’시리즈를 연출했던 권익준 PD가 주축이 돼 바로 어제(6월 18일) 새로운 시트콤을 선보였다. 방송이라 부르지 않고 공개라고 부르는 건 넷플릭스와 한국의 제작진이 만났기 때문이다. 시트콤 PD의 심리는 여전히 이중나선구조다. 제목은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인데 PD는 이렇게 해석한다. “미래는 불투명하고 불확실하니까 오늘을 열심히 재미있게 살자는 뜻입니다.” 김병욱이 뿌린 씨앗은 죽지 않았다.
[예능은 패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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