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외교의 달인’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상원의원을 무려 36년이나 했고, 상원 외교위원장도 3번이나 역임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도 부통령으로서 외교에 깊숙이 간여했다.
요즘 국제 정세를 보면 이런 그의 면모가 유감없이 나타난다. 특히 최근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서방 선진국들 지지를 이끌며 중국을 강력하게 압박하고 있다. G7 정상회의에선 중국에 신장 지역 인권을 존중하고 홍콩이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가질 수 있도록 촉구하는 내용을 공동성명에 명시했다. 대만해협 안전 문제도 거론했다. 모두 중국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것들이다. 더 나아가 미국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에 맞서 ‘더 나은 세계 재건’(Build Back Better World·B3W) 구상도 내놓았다. 투자 규모 면에서 중국의 10배에 달하는 40조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북한에 대해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불법 대량살상무기(WMD) 및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의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폐기를 촉구했다.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권과 납치 문제도 공동성명에 포함시켰다.
효과는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서방 국가 중 가장 먼저 일대일로에 참여한 이탈리아가 재검토를 선언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도 14일(현지시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중국을 ‘구조적 도전’으로 규정하며 힘을 실어주고 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전임 트럼프 행정부와 그리 다를 바 없다. 우선 중국에 대한 강경 노선이 똑같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중국 제재 트레이드 마크였던 관세 부과도 철폐하지 않고 있다. 이번 G7 정상회의에서 나온 B3W도 사실 트럼프 행정부가 먼저 시행한 바 있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는 2019년 11월 아세안 정상회의가 열린 방콕에서 인도·태평양 비즈니스 포럼을 열어 미국, 일본, 호주가 주도하는 ‘블루닷 네트워크(BDN)’ 계획을 발표했다. 지속 가능한 인프라 개발을 목표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투자와 교역을 늘리는 내용으로, 이번 G7이 발표한 B3W와 판박이다. 반이민 정책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달 초 멕시코 등을 방문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중남미 이민자들을 향해 “미국에 오지 마라”고 했다.
똑같은 외교·안보 노선인데 바이든 대통령은 전임자에 비해 별 잡음 없이 처리하고 있다. 바로 세련된 방식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우선주의’를 통해 힘으로 윽박지르듯 모든 것을 해결하려 했다면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 복원’으로 서방 세계를 이끌고 있다. “미국이 돌아왔다”는 화려한 수사까지 동원했다. 또 자유와 인권이라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역설하며 동참을 설득하고 있다. 지난달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술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사실 미국이 우리에게 공급한 백신의 양은 기대했던 것보다 한참 적었다. 하지만 한국전쟁 참전 용사 옆에서 무릎을 꿇은 사진으로 오히려 한국에 더욱 친근한 인상을 줬다. 자유와 인권이라는 대의명분을 앞세워 공동성명에 대만을 포함시켜 중국을 압박했다. 이렇듯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 때와 비교해 부드럽지만 철저한 계산으로 자신의 목표를 끝내 이루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 견제에 한국을 포함시키려 한다. 한국으로선 남북관계 개선에 중국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정부도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 정책을 정확히 판단하고, 고립된 중국의 상황도 냉정하게 평가해 실리를 찾아야 한다.
모규엽 국제부장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