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에서 “북한이 동의한다면 북한에 대한 백신 공급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북한에 동북아 방역·보건 협력체 참여를 제안한 바 있지만 공식석상에서 대북 백신 지원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통일부가 지난해 12월 북한에 코로나19 치료제와 진단키트를 지원할 수 있다고 밝힌 이후 북한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북한이 이번 문 대통령의 제안에 긍정적인 의사를 밝힐 경우 교착 상태에 있는 남북, 북·미 대화 재개의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스트리아 호프부르크궁에서 열린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한국이 글로벌 백신 허브 역할을 할 경우 북한도 당연히 협력 대상이 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개발도상국, 저소득국이 공평하게 접종해야 비로소 전 세계가 코로나에서 해방될 수 있다”며 “한국은 미국과의 백신 글로벌 파트너십 합의에 따라 백신 생산의 글로벌 허브가 되어 백신 보급을 늘림으로써 전 세계의 코로나19 퇴치에 기여하고자 한다. 미국도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협력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문 대통령은 구체적인 백신 지원 방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판데어벨렌 대통령 역시 “코로나 팬데믹은 모든 국가가 함께 해야 극복이 가능하다. 개도국, 가난한 국가 등 모두 백신 접종을 하는 게 중요하다”며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한 측의 신호가 있다면 당연히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한·미 정상이 공유한 대북정책과 관련해선 “북한의 호응이 있기를 기대한다”며 “남북 대화·협력이 보다 확대된다면 이는 북·미 대화를 촉진하는 선순환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남북 대화·협력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판데어벨렌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대해 “성공이 크게 없지 않았느냐”며 “문 대통령은 관계 정상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세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와도 회담하고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기로 했다. 한·오스트리아는 내년에 수교 130주년을 맞는다. 1892년 양국 수교 이래 한국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오스트리아를 찾은 문 대통령은 한국의 그린 뉴딜 정책과 오스트리아의 2040 기후중립 목표에 공감하고, 전기차를 비롯한 친환경 산업 분야에서의 협력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회담에 이어 한·오스트리아 양국은 문 대통령과 쿠르츠 총리가 임석한 가운데 문화협력협정, 이중과세방지협약 제2개정의정서, 청소년 교류 이행 약정, 교육 협력 의향서 등 4건의 협정 및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박세환 기자, 빈=공동취재단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