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의 탄생 이야기에 꽂힌 관객들… ‘크루엘라’ 깜짝 역주행

입력 2021-06-15 04:06
영화 ‘크루엘라’의 주인공 크루엘라(엠마 스톤·가운데)가 달마시안 개들을 데리고 친구 호레이스(폴 월터 하우저·왼쪽), 재스퍼(조엘 프라이)와 함께 있는 모습. 올댓시네마 제공

“인간의 가면을 쓴 흡혈귀 같은 여자, 영원히 가둬서 풀어주지 말아야 해. 크루엘라 드빌이 오기 전에는 온 세상이 평화로웠지.”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1961년)에서 주인공 퐁고의 반려인 로저는 영화 주제가인 ‘크루엘라 드빌’을 만들어 이렇게 노래했다. 크루엘라가 오기 전엔 정말 온 세상이 평화로웠을까.

지난달 26일 개봉한 디즈니 실사 영화 ‘크루엘라’는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의 스핀오프이자 프리퀄이다. 가난하고 무시당하던 여자아이 에스텔라가 어떻게 디즈니의 대표적인 빌런(악당) 크루엘라로 재탄생했는지를 보여주는 속편이다.

에스텔라는 태어날 때부터 머리카락의 반은 검은색, 반은 흰색이었다. 사람들은 “이상한 아이”라며 손가락질했고 에스텔라는 학교에서 자신을 못살게 구는 친구를 골탕 먹이며 문제아가 된다. 엄마는 퇴학당한 에스텔라를 데리고 새 삶을 찾아 런던으로 향한다. 도움을 구하려고 친구의 파티를 찾아간 엄마는 목숨을 잃고 에스텔라는 홀로 런던에 와서 소매치기 소년 재스퍼, 호레이스와 함께 생활한다. 유명 디자이너 바로네스 남작부인의 눈에 띄어 디자이너로 일하지만, 남작부인이 엄마를 죽였음을 알고 크루엘라로 변신해 복수한 뒤 이렇게 말한다. “슬픔엔 다섯 단계가 있다고 하지. 부정, 타협, 분노, 우울, 수용. 난 거기에 하나 더 추가하고 싶어. 복수.”

‘크루엘라’는 지난주말 개봉 3주만에 정상에 오르며 깜짝 역주행했다. 여름철을 겨냥한 공포영화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와 액션영화 ‘캐시트럭’ 등을 가뿐히 따돌리며 100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다.

빌런의 탄생을 다룬 영화는 이전에도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DC 코믹스에서 가장 유명한 빌런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조커’는 2019년 국내 개봉 한 달도 채 안 돼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영화 ‘배트맨’의 배경인 고담시에서 코미디언을 꿈꾸던 아서 플렉이 절대악이 돼 가는 과정을 현실감 있게 풀어낸 영화는 신드롬을 일으켰다. 주연 배우 호아킨 피닉스는 2020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관객들은 영화를 픽션으로만 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대중이 영화를 현실과 연결 지으면서 영화 속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 등 ‘내가 목격하거나 맞닥뜨린’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고 말한다. 빌런의 탄생을 그린 영화들이 흥행하는 이유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빌런의 탄생에 깔려있는 환경적인 조건들 즉, 어떻게 탄생했는가를 따라가다 보면 사회적 문제를 찾게 된다”면서 “빌런이 하는 행위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담아내기 때문에 관객들이 그 안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약자에 대한 혐오나 인종차별 등의 문제에 대중이 공감하기 때문에 악당이 현실에 나타난다면 상식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작품에는 몰입하게 된다”고 말했다.

주인공 크루엘라 역은 영화 ‘라라랜드’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배우 엠마 스톤이, 크루엘라를 빌런으로 만든 ‘진짜 악당’ 바로네스 남작부인 역은 배우 엠마 톰슨이 맡았다. 할리우드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두 배우의 빌런 연기 대결은 단연 돋보인다. 두 빌런이 천재적인 디자이너로 나오는 만큼 의상도 화려하다. 퀸, 비지스, 비틀즈, 블론디 등 1970년대 런던을 느끼게 해주는 음악과 배경 등이 관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