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시 도심 한가운데 구룡산에서 흘러나온 물줄기를 남쪽으로 약 20㎞ 따라가면 두꺼비 집단 서식지로 알려진 원흥이방죽이 있다. 이곳은 9900여㎡(약 3000평)에 불과하지만 멸종위기종인 두꺼비, 맹꽁이를 비롯해 소쩍새, 원앙과 같은 천연기념물, 파충류, 물속 식물 등을 품고 있다.
원흥이방죽이 ‘생태계 보고’로 남은 건 주변 산남동 마을공동체의 노력 덕분이다. 그중엔 청주시와 맞서 ‘구룡산 살리기’ 운동을 이끌었던 오동균 성공회산남교회 신부가 있다. 구룡산이 2019년 민간 개발될 위기에 처하자 오 신부는 주민들과 함께 저항해 개발 비율을 대폭 낮췄다. ‘두꺼비를 사랑한 목회자’, 그를 15일 청주시 서원구 성공회산남교회에서 만났다.
오 신부의 녹색교회 활동은 2019년 고향 후배들이 사단법인 ‘두꺼비친구들’의 공동대표직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두꺼비친구들은 2003년 한국토지공사가 택지개발을 위해 원흥이방죽을 훼손하려 하자 이를 막고 장기적으로 원흥이방죽을 보존하기 위해 시민운동 활동가들이 만든 단체다. 과거 오 신부는 대학 시절부터 고향인 청주에서 학생운동, 농민운동, 노동운동에 참여했다고 한다. 오 신부는 “타지에서 목회를 하다가 2018년 고향으로 돌아온 내게 소위 ‘운동권 후배’가 생태운동을 제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두꺼비친구들은 도시공원일몰제에 따른 구룡산공원 민간개발을 막아야 하는 과제에 맞닥뜨린 상태였다. 1999년 만들어진 도시공원일몰제는 미집행 도시계획시설(학교 용지, 도시공원 등으로 지정만 하고 조성하지 않은 장소) 사유지를 20년 후인 지난해 7월부터 용도 제한에서 풀게 하는 규정이다. 도시공원으로 보존하려면 지방자치단체가 사유지를 사들이라는 의도다. 오 신부는 “청주시는 도시공원일몰제 기한이 다가올 때까지 대책이 없었고 구룡산 구역의 30%가 아파트로 개발될 위기였다”고 회상했다.
지방 교회의 한계를 느끼던 그는 후배들의 제안을 받고 ‘생태 운동이야말로 새로운 선교 활로’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오 신부는 “구룡산 주변은 청주 시민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만큼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깨끗한 공기, 물 등 녹색 효과가 매우 크다”며 “도시공원을 최대한 많이 지켜내는 게 교회가 공동체를 위해 할 수 있는 움직임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공동대표직을 수락하고 교인들의 동의를 받아 산남교회의 선교 목표를 ‘생태 마을 공동체 활동’으로 탈바꿈했다.
오 신부는 구룡산살리기시민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본격적으로 서명운동, 촛불문화제, 모금운동을 이어갔다. 원흥이방죽과 구룡산이 청주를 넘어 충북, 한국에 미치는 생태적 영향을 시민에게 알리는 활동에 주력했다. 대중매체를 통해 구룡산살리기 운동이 알려졌고 6000만원의 기금이 모였다.
난감해진 청주시는 ‘시와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협의기구’를 만들자고 시민대책위에 요청했다. 시민대책위는 치열한 협상 끝에 구룡산 개발 비율을 기존 30%에서 5%로 낮추는 성과를 얻었다. 오 신부는 “지난해 7월까지 최종 결론을 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얼마 없어 우리에게 불리했다”며 “개발을 막진 못했지만 비율을 줄였으니 ‘절반의 성공’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오 신부는 구룡산을 살리는 과정에서 생태운동의 필요성을 다시 확신하게 됐다고 했다. 양서류는 그 지역의 생태가 건강한지 아닌지를 보여주는 ‘생태 지표종’이다. 양서류가 보존되는 곳은 먹이사슬 위에 있는 조류 등도 있고 사슬 아래에 있는 물속 생물도 건강한 곳이라는 의미다. 그는 “두꺼비가 구룡산에서부터 산남천, 무심천을 따라 원흥이방죽까지 이동하고 산란 후 주변 생태계를 일궈내는 전체 과정을 보면서 인간의 난개발이 얼마나 생태계에 치명적인지 체감했다”고 말했다.
생태적 깨달음을 신학적으로 확장하기 위해 오 신부는 올해 초 청주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내 생명신학위원회를 만들고 교회가 생태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신학적 근거나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교회 대다수가 생명이라는 이슈에 대해 ‘하나님 창조주에게 생명 주권이 있다’는 과거의 단순한 입장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코로나19와 기후 위기를 맞은 현재, 하나님의 새로운 섭리를 발견하지 않으면 생명의 의미를 잃어버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러 생태 위기에 맞선 새로운 해답을 생태신학과 생명신학에서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 신부는 생태운동을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 교회의 새로운 선교적 목표로 삼을 것을 제안했다. 그는 지방 교회들이 인구의 초고령화, 난개발에 따른 지방 특색 소멸 등의 위험에 속수무책인 것을 우려했다. 그러면서 “작은 교회가 ‘마을 교회’로 거듭나려면 지속적으로 마을 공동체와 접촉 면을 늘려야 한다”며 “생태운동이 미래 과제로 떠오를 텐데 교회가 운동 주체로 서야 한다”고 말했다.
오 신부는 마을 공동체와 함께하는 친환경운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최근에는 로컬푸드 매장 ‘두꺼비살림’을 통해 플라스틱, 비닐 용기 소비를 줄이는 ‘용기내 운동’을 시작했다. 가정에서 직접 식품을 담을 용기를 가져온 소비자에게 할인 등 혜택을 주는 친환경 실천운동이다. 오 신부는 “녹색교회로서 사람과 마을을 지켜내면 선교활동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청주=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