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검찰이 수사 대상인 사건을 잇따라 입건하고 수사에 나서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소속 검사가 부족한 공수처가 ‘무더기 입건’에 나선 의도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는 현재까지 9개 사건을 입건했다. 1~2호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특별채용 의혹, 3호는 ‘윤중천 면담보고서’ 허위 작성 의혹, 4호는 이성윤 서울고검장 공소장 유출 의혹이다. 5~6호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수사외압 의혹이 포함됐을 것으로 보인다. 7~8호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관련 고발 사건, 9호는 부산 엘시티 수사 관련 고발 사건이다.
공수처 전체 검사 15명 중 현재 수사부서(2~3부) 소속 검사는 9명이다. 9건을 수사할 여력이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공수처가 윤 전 총장 등 주목을 끄는 사건들을 입건한 건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행보라는 해석도 나온다. 고소 고발이 들어오면 자동으로 ‘형제 번호’를 부여하고 수사하는 검찰과 달리 공수처는 고소 고발 사건을 수사처수리사건으로 접수한 후 검사가 수사 필요성을 검토한다. 이후 직접수사 필요성이 있는 경우 ‘공제 번호’를 붙이고 입건한다. 검찰과 달리 입건 단계에 공수처의 해석 및 평가가 개입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윤 전 총장이 대선 후보로 부상하고 검찰과의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진행된 입건이 시기적으로 미묘하다는 시각도 있다.
윤 전 총장의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 감찰 방해 의혹은 법무부 징계위원회에서 무혐의 결정을 내렸던 사안이다. 다만 윤 전 총장이 징계 복귀 뒤 사건을 배당하는 과정에서 임은정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이 “직무 배제됐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대검은 규정에 따른 배당이라고 설명해왔다.
만약 공수처가 임 연구관 등에 대한 조사에 나설 경우 정치적 파장이 커질 수도 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공수처가 사건을 입건해 들고 있으면 정치권에서 입맛에 맞게 확대재생산 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교육감 수사에 여권이 공세를 퍼붓는 상황에서 운신의 폭을 넓히려는 선택이라는 해석도 있다. 대외적으로 균형감 있게 수사를 진행하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고발 사건 입건에 큰 의미를 둘 필요 없다는 의견도 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몇몇 사건의 경우 혐의가 인정되기 어려워 보인다”며 “입건하지도 않고 처리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통상적 절차 아니겠느냐”라고 전망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