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청은 국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15억명 이상이 난청을 앓고 있다. 재활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중·고도 난청 인구만도 4억3000만명가량이다.
WHO는 지난 3월 펴낸 ‘세계 청력 보고서’에서 2050년까지 이 수가 각각 25억명과 7억1100만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며 각국 정부에 난청 관련 정책을 개선하도록 촉구했다. 난청 문제를 방치하면 소통은 물론이고 언어 발달, 인지, 교육, 고용, 정신 건강, 대인 관계에 모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IPC-EHC(Integrated People-Centered Ear And Hearing Care)라는 개념을 난청 정책의 핵심으로 강조했다.
IPC-EHC의 첫째 핵심 요소는 통합성이다. 국가가 직접 나서 난청의 예방, 진단, 관리와 재활을 유기적으로 연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요소는 인간 중심성이다. 수요자에게 질 좋은 장비·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호주가 대표적 사례다. WHO가 IPC-EHC 모델을 주장하기 전부터 호주는 청각 관리 선진국으로 꼽혀왔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재향군인들의 난청 재활에 나선 것이 시작이었다. 1991년과 1997년엔 청력 서비스 관련 법률을 통과시켜 난청 바우처 등의 지원체계를 법으로 규정했다.
26세 미만의 호주 시민이나 연금 카드 소지자, 퇴역군인, 50세 이상의 원주민 등이 이렇게 마련된 호주 청력 서비스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고 있다. 이와 별도로 소득 기준 없이 모든 장애를 대상으로 하는 국가 장애보험 제도도 존재한다. 그 결과 대상자들에게는 보청기 구매와 유지·관리는 물론이고 청력검사와 각종 재활치료, 보청기 외의 청력 보조기기, 인공와우 삽입술에 드는 비용까지 지원된다. 국내의 경우엔 건강보험이 적용돼도 인공와우 수술 한 쪽당 600~700만원의 부담이 발생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구성민 나우히어링 청각언어센터 대표는 “세계적으로도 정부가 청력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며 “(호주는) 법에 더해 청력 서비스 시설과 인력, 장비, 서비스를 인증하는 제도를 둬 이용자들의 만족도도 높다”고 설명했다.
국가 차원에서 난청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해 개선하려는 움직임은 다른 나라에서도 관측된다. 미국은 10년마다 수립하는 중장기 국민건강목표(Healthy People) 내에 난청 및 여타 감각 장애 관련 항목을 별도로 두고 있다. 여기에는 생후 1개월 이내에 실시하는 청력 선별검사의 수검률, 5년 이내에 한 번이라도 청력검사를 받은 성인의 비율, 보청기 사용률, 성인 소음성 난청 유병률 등의 구체적인 현황과 목표치가 포함돼 있다. 이후 질병통제예방센터를 비롯한 유관기관끼리 꾸린 실무 그룹에서 각 목표 항목들이 얼마나 이뤄지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방식이다.
서방 국가들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인도는 2006년 국가 난청 예방·관리 프로그램(NPPCD)을 수립해 10개 주와 1개 연방 직할지에서 시범 적용하기 시작했다. 인도 정부와 각 주에서 난청 관련 인력을 교육하고 의료기관마다 청력 전문가를 배치하는 것이 골자였다. NPPCD는 이후 5년 단위의 경제 개발 계획과 연동돼 점차 확대됐고 2016년엔 27개 주 및 연방 직할지, 228개 구역에서 시행됐다. 중국 역시 난청 해결을 핵심적인 국가 과제로 보고 2005년 보건부와 장애인 단체의 협력으로 유사한 사업인 ‘Hearing the Future’를 시작했다. 정부와 학계, 기업이 협력해 난청 예방 및 재활 교육을 실시했고 청각 언어 치료사 등 전문 인력 양성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예방과 관리에 앞서 실태 조사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호주 정부는 매년 난청 보고서를 펴내고 있고, 유럽에서도 보청기 제조사 협회(EHMIA)가 주기적으로 난청 유병률뿐 아니라 보청기 보급률과 만족도 등도 조사하고 있다. 반면 국내는 2012년 국민건강영양조사를 마지막으로 변변한 난청 유병률 통계조차 없다. 민간 차원의 조사가 간혹 이뤄지고 있지만 규모와 지속성 면에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박상호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 학술위원은 “핵심은 현황 파악”이라며 “국내는 보험 급여 수준에 비해 예방 측면의 정책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정확하게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선 기존에 시행되고 있는 청력검사 체계, 특히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청력검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인력과 장비 모두 전문성이 떨어지는 기존 학교 청력검사로는 난청 여부를 제대로 집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단일 주파수의 소리를 들려주는 방식이기에 정확도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여러 차례 제기됐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서로 다른 세 주파수(1, 2, 4kHz)의 소리로 청력검사를 실시한다. 오클라호마주에선 숙련된 청각사가 학교 내의 보건 담당자를 교육하거나 아예 검사를 대신 진행한다.
더 큰 틀에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호주처럼 청각 관련 법이나 각계 전문가들을 포함하는 정부 주도의 위원회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박 학술위원은 “전문의들과 청각학 연구자 등이 모여 하나의 위원회를 만들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민간 차원이다 보니 예산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었다”며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특별취재팀=송경모 최예슬 기자,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ssong@kmib.co.kr
[난청, 늦기 전에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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