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일 겨울 강바람이 부는 한강대교 위에 한 여성이 홀로 서 있었다. 다리에서 내려다본 한강은 유난히 검고 깊어 보였다. 한강은 김혜진(가명·38)씨를 순식간에 집어삼킬 것 같았다. 당시 혜진씨의 몸과 마음은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다섯 차례 이상 극단적 시도까지 한 뒤였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월세방에서 수면제를 한 움큼 삼켰다가 눈을 떠보니 병원인 적도 있었다.
서울 용산구 서울역노숙인자활센터에서 10일 국민일보 기자와 만난 혜진씨는 “모진 목숨은 죽어지지도 않았다”며 과거를 떠올렸다. 혜진씨가 한강을 찾기 전날 집주인은 “방을 빼라”고 했고, 수중엔 5만원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한강이라도 한 번 보고 세상을 떠나자’라는 생각에 그는 대구에서 무작정 서울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하지만 막상 다리 위에서 한강을 마주하자 겁부터 났다. 혜진씨는 결국 뛰어내리는 대신 날이 어두워지면 걸어 들어가자고 생각하고 다리 아래로 내려왔다. 그제야 한강변을 걷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표정들은 하나같이 밝고 행복했다. 해가 질 무렵까지 혜진씨는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서울역 주변에 있는 노숙인재활센터 홈페이지를 우연히 보게 됐다. 혜진씨는 “그래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맘속 깊은 구석에 남아 있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혜진씨는 센터로 전화를 걸어 “지금 자살하려 하고 있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화를 받은 센터 관계자는 “도와줄 테니 내가 있는 곳으로 오라”고 권유했다. 남은 돈이 없어 갈 방법이 없었던 혜진씨를 대신해 센터에서 경찰에 “자살하려는 사람이 있다”며 구조 요청을 보냈다. 이후 용산경찰서 한강로지구대에서 혜진씨를 찾았고 경찰은 그를 가까운 순천향대서울병원으로 데려다줬다.
센터의 도움을 받은 혜진씨는 현재 보증금 없이 월세 25만원에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방을 얻어 혼자 살고 있다. 손목의 상흔은 치료를 받아 아물었지만 병원에서는 후유증이 평생 갈 것이라고 했다. 여전히 우울증이 심하고 충동적이라는 진단을 받아 정신과 치료도 받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혜진씨는 자신에게 이런 일이 닥칠 것이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다. 지난해 2월 대구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확산되면서 혜진씨 인생도 180도 달라졌다. 잠시 지나갈 줄 알았던 바이러스는 혜진씨 직장을 빼앗았고 ‘코로나19 감염 진앙지 출신’이라는 사회적 낙인으로 다른 지역에서의 취업도 어려워졌다. 갑자기 일자리를 잃은 시민들이 몰리면서 편의점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에도 7~8명과 경쟁해야 했다. 수개월 동안 구직 활동을 했지만 일자리는 없었다. “내 몸 하나 간수 못하겠나”라고 자부했던 혜진씨의 삶은 그렇게 무너졌다. 지난해 코로나19 집단감염 이후 1년 넘게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혜진씨에게 재난은 현재진행형이다.
대구에서 태어나 조부모 밑에서 자란 혜진씨는 성인이 된 후 통신사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하며 생계를 꾸렸다. 5년 전 조부모가 차례로 돌아가신 뒤로는 옷가게와 식당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혼자 생활했다. 2019년 말부터는 충북 옥천군 택배 물류센터에서 물품 분류 일을 시작했다. 대구에서 옥천으로 출근해 저녁부터 새벽까지 일해야 했지만 아르바이트보다 돈벌이가 좋았다. 힘들고 부족했지만 혼자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았다.
불행은 코로나19와 함께 찾아왔다. 지난해 2월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가 터지면서 회사 분위기가 달라졌다. 대구 지역 확진자가 늘면서 ‘대구 사람은 코로나19 감염자’라는 인식이 퍼졌다. 옥천 물류센터에서도 대구에서 출퇴근하던 인력업체 전원을 작업장에서 뺐다. 대구에서 산다는 이유로 혜진씨를 비롯해 15명의 동료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당시 혜진씨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 살 집을 구하다 ‘전세 사기’를 당한 상태였다. 상담원으로 10년간 일하며 모은 8000만원으로 전셋집을 구했지만 알고 보니 다른 사람 명의였다. ‘가짜 집주인’은 전세금을 갖고 사라졌다. 전세금에 보태기 위해 제2금융권에서 받았던 대출금(3000만원)으로 인한 이자는 실직한 혜진씨에게 큰 부담이었다. 혜진씨와 함께 일자리를 잃은 동료들의 생활도 비참하긴 마찬가지였다. 누구는 전국 각지의 공장을 떠돌며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고, 누구는 성매매를 시작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물류센터 일을 그만둘 때까지만 해도 혜진씨는 다시 일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마비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혜진씨는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죽는 방법밖에는 해결책이 없다고 느껴졌다”고 말했다.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었지만 전 직장에서 일한 기간이 180일이 안돼 실업급여도 받지 못했다. 정부가 지난해 4월 지급했던 40만원의 긴급재난지원금과 대구시가 같은 달 저소득 위기가구에 지급했던 한시적생계지원금 50만원은 금방 바닥을 드러냈다.
지난해 6월부터는 월세 낼 돈까지 바닥나 보증금에서 월세가 빠져나갔다. 희망을 찾을 수 없었던 혜진씨는 여러 번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마다 월세 독촉을 하러 온 집주인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다. 집주인은 지난 1월 “더 이상 데리고 있을 수 없다”며 방을 빼 달라고 요구했다. 혜진씨는 노숙생활을 하느니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혜진씨가 한강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마음먹었던 지난 2월 1일 경찰이 혜진씨를 발견했을 때 그의 팔엔 깊게 파인 상처와 함께 반창고 하나가 붙어 있었다. 경찰은 즉시 혜진씨를 순천향대 서울병원으로 이송했다. 이후 자살예방센터 상담이 이뤄졌지만 입원비가 없던 혜진씨는 몰래 병원을 빠져나와 노숙인재활센터로 향했다.
혜진씨는 센터의 도움으로 지난달 24일부터 경기도 용인 택배 물류센터에서 다시 물품 분류 일을 시작했다. 오후 6~7시부터 일을 시작하면 다음 날 새벽 6시쯤 끝나는데, 잔업이 많아 8시까지 일을 해도 혜진씨는 행복하다고 했다. 혜진씨는 “쪽방이라도 당장 지낼 수 있는 곳이 있고 일을 할 수 있어 다행”이라며 “꼭 자립해서 밥이라도 혼자 해 먹을 수 있는 원룸을 얻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