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반도체 육성 계획이 인재(人材)라는 걸림돌을 만났다. 반도체 업계가 필요로 하는 석·박사급 인재 육성 사업이 빨라도 2023년부터나 시행된다. 인재 육성은 기술 개발과 달리 기업에서 독자적으로 추진하기 힘든 분야인 만큼 당분간 인재난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2023년이면 인재 부족 현상이 해소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인재 육성에 필요한 예산이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통과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정부의 야심찬 ‘K반도체 전략’이 시작부터 삐걱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10일 혁신성장 빅(BIG)3 추진 회의를 열고 K반도체 대규모 예타 사업 추진 방안을 확정했다. 인재 육성,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술 개발 등을 포함해 모두 5개 예타 사업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르면 내년 예산부터 사업 관련 예산을 반영해 2032년까지 첨단 반도체 산업 육성에 힘을 쏟는다. 연구개발(R&D) 등에 2조원 가까운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다.
다만 정부의 의도대로 초격차 유지에 충분한 수준인 지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반도체 업계의 대표적인 애로사항인 인력난 해소 대책이 문제로 꼽힌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민·관이 공동 투자해 인력을 양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기업이 참여하는 R&D 과제를 수행한 경험이 있는 실무형 석·박사급 인재를 배출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와 기업이 50%씩 예산을 각출하기로 하고 우선 정부가 35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10년간 3500명의 인재를 길러내겠다는 구상이다. 그런데 해당 예산은 2023년 예산안부터나 반영될 예정이다. 최소한 내년까지는 인재 육성 계획이 없다.
올해 안에 예타를 추진하기는 한다. 하지만 신속히 통과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보니 일정을 2023년부터로 잡은 것으로 파악된다. 전례가 있어서다. 산업부는 업계의 고급 인재 수요 충족을 위해 지난해 2분기와 3분기에 걸쳐 2차례 예타를 신청한 바 있다. ‘반도체 고급인력 양성 연계 민관협력 산학 원천기술 개발사업’이라는 명칭으로 심사를 받았다. 계획대로라면 올해에만 420명의 석·박사급 인재가 배출됐어야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사업은 올해 예산은커녕 내년 예산에도 반영되지 않았다. 예타 권한을 지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의 국가연구개발사업평가 총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4월 최종적으로 예산 반영 ‘불가’ 판정을 받았다.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시와 사업 내용이 그리 다르지 않다. 예산을 절반씩 부담하는 점이나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와 같은 반도체 기업 엔지니어가 학생들 멘토링을 통해 인력을 양성한다는 점이 판박이다. 2023년 예산 배정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당시 인력 양성 관점 고려가 부족하다는 점으로 통과되지 못했다. 2023년에는 꼭 예산에 반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