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 기도 안들어주시나’ 원망 말고 이루실 것을 믿자

입력 2021-06-14 03:09
최상훈 서울 화양감리교회 목사와 청년들이 2019년 7월 케냐 레소잇 저수지 봉헌식을 갖고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최 목사는 감신대 졸업 후 1998년부터 7년간 케냐와 우간다 선교사로 헌신했다.

1989년 서울 감신대에 입학했다. 들어가자마자 신입생 등록금 인상 문제로 학내가 시끄러웠다. 1학기 과대표를 맡았기 때문에 자연스레 등록금 투쟁공동위원장를 맡았고 투쟁의 선두에 서게 됐다.

한 학기 내내 학내투쟁에 전념하느라 기도생활과 영성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대학가에서는 드문 케이스인데, 학교 측으로부터 부당한 등록금 인상분을 환급받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당시는 5공 청문회, 전교조 출범 등 사회적 이슈가 많았던 시기다. 나름 책임감을 느끼고 학생회장에 출마했다. 그런데 무난히 당선될 줄 알았는데 40여표 차로 낙선했다.

그날 학교 웰치채플에 가서 멍하니 혼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잠시 묵상하는데 문득 중고등학교 시절 그렇게 매일 기도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새벽마다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모습도 오버랩됐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그동안 여러 가지 생각과 죄송함 때문에 하염없이 울었다. 휴지를 찾다가 그때 가방 안에 깊이 넣어 두었던 작은 서류봉투를 발견했다. ‘아, 이 봉투가 여기 있었구나.’

그 작은 서류봉투는 예수전도단 캠프를 갔을 때 한 간사님이 준 것이다. “상훈아, 살아가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이걸 열어보렴.” 그동안 가방 주머니 속에 넣어 두고 까맣게 잊어버렸는데 때마침 발견한 것이다.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었다. 그런데 안에는 아무것도 없고 붉은 천 조각 하나와 오래된 못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게 뭐야. 공사판에 쓰던 못인가.’ 계속 쳐다보다가 그 의미가 다가왔다. 전율이 느껴졌다. 그 못은 오래된 녹슨 못이었고, 천 조각은 붉은 천 조각이었다.

어려운 순간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그리스도의 피와 박혔던 못을 기억하라고 주신 선물이었다. 그 순간 주님이 나와 이 자리에 함께하심이 강하게 느껴졌다. 감사의 고백이 나왔고 다시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이후 입대를 결심했다. 이왕이면 군목으로 가고 싶어 열심히 공부했다. 한 달 동안 교회에서 작정 기도하면서 군목시험을 봤다. 시험은 잘 봤다. 결과가 발표됐는데 1차 26명 합격자 안에 들어갔다. 2차 설교에도 합격했다. 그런데 떨어졌다. 알고 보니 학생운동경력 때문이었다. 시험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는데 예기치 않은 일로 떨어지니 많이 속상했다.

이번에는 ‘꿩 아니면 닭이라도’라는 심정으로 군종병으로 가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군대에 아는 목사님이 계시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간절히 작정기도해서 응답을 받고 싶었다. ‘주님, 군목이 못 됐지만 저 군종병이라도 시켜주세요. 그리고 군대교회에서 성가대 지휘자나 반주자로 쓰임 받게 해 주세요.’ 신학생이기도 하고 당시 상황으로 피아노, 기타도 제법 쳤기 때문에 군종병이 될 가능성도 컸다. 그런데 훈련을 마치고 자대배치된 곳이 그만 공병대였다.

‘하나님은 왜 나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신 걸까.’ 군목도 떨어지고 군종병도 되지 못해 너무 실망스러웠다. 더구나 공병대는 말이 공병대지 노가다나 마찬가지였다. 나의 보직은 공병대 작업병이었다. 종일 콘크리트를 만드는, 소위 공구리 작업을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삽질만 했다. 손에 굳은살이 배기도록 자갈을 날랐다. 자갈과 시멘트, 모래를 섞는 일만 하니 너무 힘들었다. 급기야 일하다가 허리까지 다쳤다. 고통이 심해 MRI 촬영을 하고 치료를 받았다. 앉아 있는 것조차도 힘들 정도로 허리가 아팠다.

‘왜 하나님께서는 군종병에 배치해주셨을까. 이렇게 작업병을 하게 하셔서 고생만 하게 하시나.’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공병대에서 작업병으로 고생하게 하신 이유는 엄청난 은혜이자 배려였다. 그 이유를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나님의 크신 경륜과 계획은 실로 놀랍고 대단하다. 제대하고 감신대를 졸업한 후 아프리카 우간다, 케냐 선교사로 가서 하나님의 크신 뜻을 알게 됐다. 그곳 원주민 마을에서 제대로 콘크리트 건물을 지을 줄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당연히 건축을 아는 이도 없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나를 공병대 작업병으로 보내셔서 건축의 전문가가 되게 하셨다. 그 기술로 원주민 마을에 교회를 7개 교회나 세울 수 있게 하셨다. 이 은혜를 깨달은 후 하나님 앞에 털썩 무릎 꿇고 감사의 기도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건축방법을 전수받은 원주민들이 주님께 돌아오는 영혼 구원의 역사도 일어났다.

그렇다. 하나님의 자녀에겐 결코 우연은 없다. 비록 현재의 환경과 상황이 어려울지라도 합력해 선을 이루실 것을 꼭 믿자. 현재 상황을 감사함으로 받고 고백하면 하나님은 감사의 풍성함으로 채워 주실 것이다.

최상훈 서울 화양감리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