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폭탄’ 노후건물… 안전조치 제대로 않고 철거 ‘예고된 인재’

입력 2021-06-10 04:02
9일 오후 4시23분쯤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지역의 한 노후건물이 철거작업 도중 붕괴돼 인근 도로를 지나던 버스 1대와 승용차 2대를 덮치고 있다. 이 사고로 9명이 숨지고 8명이 크게 다쳤지만, 매몰된 사람이 몇 명인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다. 뉴시스

9일 광주 도심 한복판에서 발생한 노후건물 붕괴사고는 ‘예고된 인재’로 드러나고 있다. 재개발을 위해 철거작업에 들어간 5층짜리 낡은 건물은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나 다름 없었지만 안전사고를 막기 위한 장치는 외부 벽면을 따라 세워둔 임시 구조물과 가림막이 전부였다.

녹슨 철근이 박힌 시멘트와 흙 더미로 산산히 분해된 건물에는 그동안 철강 보강 등 보수작업을 거의 하지 않은 흔적이 역력했다. 건물 외벽 곳곳에 금이 간 곳이 눈으로 식별될 정도였다. 하지만 광주 학동 제4구역 재개발 사업이 수년 전부터 추진되면서 곧 철거될 것으로 보고 개·보수는 거의 이뤄지지 않은 채 방치됐다.

철거작업 과정도 의문 투성이다. 작업자들은 5층 건물을 옥상부터 뜯어내리며 1개 층씩 내려가는 방식으로 철거를 시작했다. 이를 위해 붕괴된 건물 옆에 비슷한 높이의 일명 ‘토산’을 쌓아 진입로를 구축한 뒤 굴착기를 건물내부로 진입시켜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건물 구조물을 부쉈다. 수개월 전부터 건물 사면에 드리워진 가림막 탓에 철거업체가 건물 무게를 분산시키기 위한 철제기둥 등 붕괴사고에 대비한 안전구조물을 제대로 설치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철거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안전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철거작업을 서둘렀다가 붕괴사고가 발생했을 개연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5층에서 철거작업을 하던 굴착기가 건축한 지 40~50년이 지난 노후 건물의 내력벽을 함부로 무너뜨리거나 한쪽 바닥만 먼저 부숴 무게중심이 순식간에 한쪽으로 쏠리게 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문모(58)씨는 ”사고 당시 잔해에 깔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시내버스 정류장 인근에서 엄청난 굉음과 함께 희뿌연 먼지구름 속으로 엄청난 양의 흙더미와 건물더미가 쏟아져내렸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정부가 건물 철거 공사의 안전 규제를 대폭 강화했는데도 사고를 막지 못했다. 지난해 5월부터 시행된 ‘건축물관리법’은 건축물이 준공된 이후 철거될 때까지 안전점검 등 체계적인 관리를 받도록 했다. 이 법에는 건물 철거시 철저한 안전관리를 받게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건물 관리자는 건물을 해체하는 경우 지자체에 안전계획이 포함된 해체계획서를 제출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지자체는 해체 작업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 감리를 지정해야 한다. 법에는 허가를 받지 않고 건물을 해체하다 공중에 위험을 발생하게 한 경우 10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하는 벌칙 조항도 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