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 부실 수사 의혹을 조사해온 경찰 진상조사단이 ‘윗선 개입이나 외압은 없었다’고 결론냈다. 5개월간의 진상조사 결과 송치된 경찰은 담당 수사관 한 명이다. 팀장, 과장, 서장이 아닌 말단 수사관이 부실 수사의 책임을 모두 지는 것이어서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경찰청 청문·수사 합동진상조사단은 9일 브리핑을 열어 “지난해 11월 6일 발생한 이 전 차관 택시기사 폭행 사건의 전 과정을 들여다본 결과 외압이나 청탁 등은 없었다”고 밝혔다. 폭행 당시 택시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한 사람은 담당 수사관 A경사밖에 없다고 보고 그에게 특수직무유기혐의를 적용했다. 부실 수사는 서초서의 조직적 은폐가 아니라 실무자 한 명의 일탈 때문이라고 본 것이다.
진상조사단은 과장과 팀장의 경우 업무 관리 소홀 책임은 인정되지만 특수직무유기 혐의는 명확지 않다고 보고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경찰수사 심의위원회에 회부하기로 했다. 윗선에 보고하지 않은 서장에 대해선 진상조사 내용을 토대로 감찰할 예정이다.
조사 결과 정식 보고는 없었다고 하지만 실무자 간 공유가 이뤄진 것을 보면 외압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서초서 생안과 B경위는 사건 발생 사흘 뒤인 11월 9일 내부 메신저로 서울청 생안계 직원에게 수사 내용을 전달했다. 이 서울청 직원은 세 차례에 걸쳐 B경위에게 진행 경과를 파악하고도 따로 보고하지 않았다.
진상조사단은 생안계는 수사 라인이 아니어서 정식 보고가 아니라고 봤다. 진상조사단 관계자는 “이 전 차관과 당시 서장을 포함한 대상자의 통화내역 8000여건을 분석한 결과 전현직 경찰관과 통화한 내역은 없었다”고 했다. 반면 한 법조계 관계자는 “서울청 생안계 관계자가 서초서에 3번이나 사건 관련 확인 전화를 했다는 대목이 걸린다”며 “이를 지시한 누군가에 대한 확인이 미흡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특히 수사 담당자의 휴대전화 일부 데이터가 삭제돼 진상조사단이 데이터 일부를 복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범죄수사규칙상 보고 대상인 변호사 관련 사건에서 윗선 보고가 없었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진상조사단 관계자는 “(관련자들은) 서초동에 변호사들이 워낙 많아 따로 보고를 못 했다고 진술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전 차관이 공수처장 후보로 거론된다는 점을 서장, 과장, 팀장이 알았다는 걸 감안하면 해당 설명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합의금을 건네고 블랙박스 영상 삭제를 부탁한 이 전 차관에겐 증거인멸교사 혐의가 적용됐다. 경찰은 증거인멸교사 혐의는 정범(증거인멸을 실행한 사람)이 함께 처벌돼야 해 택시기사도 증거인멸 혐의로 송치했다. 다만 경찰은 택시기사가 피해자라는 점 등을 참작키로 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