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650만의 중남미 소국 엘살바도르가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비트코인을 정식 화폐로 승인했다.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이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승인하겠다고 밝힌 지 4일 만이다.
로이터통신은 9일 엘살바도르 의회가 부켈레 대통령이 제출한 비트코인 법정통화 승인 안건을 84표 중 62표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고 보도했다. 법에서 비트코인을 통화로 인정한 경우는 사상 처음이다.
엘살바도르 헌법에 따르면 90일 뒤 법안이 공표되면 비트코인은 미국 달러와 함께 공식 법정통화가 된다. 법안에 따르면 가게에서는 비트코인으로 가격을 표시하거나 대금을 받을 수 있다. 관공서에서는 세금 분담금을 비트코인으로 징수하게 된다. 엘살바도르는 ‘화폐가 된’ 비트코인 교환에는 양도소득세를 별도로 부과하지 않기로 했다.
부켈레 대통령은 표결 직후 트위터를 통해 “비트코인 사용은 선택에 달렸다. 정부는 모든 거래시점에 정확한 달러 가치가 반영될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이라며 “비트코인 거래가 활성화되면 금융, 투자, 관광, 경제발전의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엘살바도르 인구의 70%는 지금까지 현금만을 이용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 5일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비트코인 2021 콘퍼런스’에서 법정통화 승인안을 제출하겠다고 처음 밝혔다.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에 전향적인 입장을 보인 것은 해외 노동자들의 송금에 크게 의존하는 경제 시스템 때문이다. 세계은행(WB)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엘살바도르의 해외 노동자 국내 송금액수는 60억 달러(6조6870억원) 규모로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GDP)의 22% 정도를 차지한다. 미국 CNBC방송은 “비트코인으로 환전 차익 유출을 막고 막대한 송금 수수료를 절약할 수 있다는 계산”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외길’을 고운 시선으로만 보지 않는다. 로이터통신은 “엘살바도르에 10억 달러(1조1142억여원) 규모의 지원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던 국제통화기금(IMF)이 비트코인 법정통화 승인으로 인해 고민에 빠졌다”고 전했다. 시오반 모르든 애머스트 피어포인트 증권 중남미팀장은 “비트코인을 시장에 완전히 포함시키려는 엘살바도르의 행보는 비트코인을 인정하지 않는 IMF와의 논의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지연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엘살바도르의 법정통화 승인 소식에 이날 비트코인 시세는 한때 5% 이상 급등하기도 했다. 다만 계속 하락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금융서비스 업체인 오안다, 시장분석 업체인 에버코어ISI, 톨백컨 캐피털 어드바이저스 등을 인용해 비트코인 시세가 개당 2만 달러대로 더 추락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