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생 학력을 보여주는 지표가 역대 최악을 기록했다. 지난 2일 발표된 ‘2020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보면 고2 ‘보통학력 이상’ 비율이 2019년 65.5%에서 2020년 60.8%로 4.7% 포인트 떨어졌다. 교육부는 코로나19로 등교가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진단한다. 하지만 그간 학력 저하 흐름을 보면 옹색한 변명으로 비친다. 같은 지표는 2017~2018년 6.5% 포인트, 2018~2019년 4.9% 포인트 하락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오히려 낙폭이 줄어든 것이다. 코로나19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얘기다. 정부는 등교 확대를 만병통치약처럼 말하면서도 코로나19 상황에서 등교를 더 자주 했던 읍면 지역의 학생들의 학력이 대도시보다 더 떨어진 점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진단이 잘못되면 올바른 처방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학생들의 학력을 끌어내린 요인은 무엇인지 들여다봤다.
9년 무시험 깜깜이, 고1 때 ‘쇼크’
학생들은 초등학교 입학 뒤 중3까지 공교육 영역에서 자신의 객관적인 학력을 측정할 방법이 없다. 과거에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가 지금처럼 일부 학생만 표본 추출하는 방식이 아닌 일제고사 방식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진보성향 교육감들의 영향을 받은 문재인정부 등장 후 사라졌다. 학생들이 시험을 보긴 본다. 학교 단위로 치르는 정기고사(중간·기말고사)인데 객관적인 학력을 측정하기는 어렵다.
11일 종로학원하늘교육이 전국 중학교의 학교알리미 공시자료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학교 시험의 맹점이 잘 드러난다. 지난해 중3 1학기 정기고사의 성적과 이들이 고교에 진학해 처음 치른 지난 3월 전국 단위 모의고사(교육청 학력평가) 성적을 비교한 데이터다.
학교 시험에서 수학 90점 이상 받은 학생은 전국 평균 31.3%였다. 전국 모의고사에서는 불과 2%였다. 80점 이상으로 확대하면 학교 시험은 45.7%, 전국 모의고사는 7.2%였다. 학교 시험에서 50점 이하 성적을 받은 학생 비율은 35%에 불과했으나 전국 모의고사에선 72.2%로 나타났다. 중학교 내신 성적이 아무리 절대평가여도 격차가 지나치다. 국어는 더 심각한데 학교 시험 90점 이상이 32%, 전국 모의고사는 0.7%였다. 80점 이상 비율은 54.1% 대 4.5%로 12배 차이다. 50점 이하는 학교 시험 18.9%, 전국 모의고사 70%였다.
수업과 평가는 한 묶음이다. 학생은 수업에서 잘 배웠는지 평가를 받아야 한다. 평가에서 부족한 부분을 드러내고 보충하는 과정을 거쳐야 제대로 공부한다고 볼 수 있다. 교사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지 학생 시험 결과로 평가받는다. 학생이 소화하지 못하는 부분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보완해야 제대로 가르친다고 볼 수 있다. 학교 현장은 현재 수업과 평가 중 한 축이 무너진 상태인 것이다. 이 때문에 중3 학생 상당수는 자신이 남들만큼 공부한다고 착각하고 지내다가 고교에 올라와 당혹스러운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
사교육비 증가율 朴정부 때보다 2배
이런 상황에서 사교육을 찾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고교 사교육비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교육부·통계청의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보면 2017년 28만5000원이었던 고교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지난해 38만8000원으로 치솟았다. 현 정부 집권 기간인 2017~2020년 고교생 1인당 사교육비 증가율은 36.14%다. 박근혜정부 집권 기간인 2013~2016년 증가율 17.49%의 2배를 뛰어넘는다.
현 정부가 교육 분야 치적으로 첫손에 꼽는 게 고교무상교육이다. 그러나 사교육비 억제 실패로 학부모의 교육비 부담을 줄여주기는커녕 고교무상교육에 쏟아부은 혈세로 사교육 배만 불린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교육철학 부재에서 오는 오락가락 정책의 예고된 재앙이란 지적이다. 문재인정부는 전교조 등이 추구하는 ‘진보 코드’의 교육 정책을 추구해 왔다. 점수로 줄 세우는 교육을 죄악으로 여겨 전국 단위 일제고사를 없애더니 학교 지필고사 비중도 줄였다. 이런 방향 자체가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학력 저하 논란은 ‘학생 개개인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 과정 중심 교육’이란 명분으로 돌파 가능해 보인다.
문제는 일관성이다. 대입이 초·중등 교육에 미치는 파급력을 고려하면 수능의 힘을 빼지 않고는 ‘줄 세우지 않는 교육’은 허상에 가깝다. 그러나 정부는 수능 절대평가 정책이 인기가 없자 정시 비중을 올리더니 이른바 ‘조국 사태’ 때는 주요 대학의 정시 비중을 40% 이상으로 못 박았다. 성적으로 줄 세우는 일제고사를 학교 현장에서 퇴출한다면서도 일제고사의 ‘맏형’격인 수능의 영향력을 대폭 강화했다. 초·중등 교육과 대입 제도의 부조화를 자초한 셈이다. 경기도의 한 고교 교사는 “중학교까지 웃는 얼굴로 줄 세우기 없다 말하다가 고교에서 뒤통수치는 격”이라며 “공교육 신뢰를 갉아먹어 사교육을 도와주는 건 다름 아닌 정부”라고 꼬집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