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준상(51)은 50세를 넘긴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젊음과 활력을 뿜어낸다. 영화, 브라운관, 무대에서 배우로서만이 아니라 감독, 작곡가, 뮤지션으로서 쉬지 않고 활동한다. 올 상반기만 해도 스테디셀러 뮤지컬 ‘그날들’과 인기리에 종영한 OCN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에서 탁월한 캐릭터 소화력을 보여줬다. 4월 개봉한 영화 ‘스프링 송’에서는 제작, 감독, 주연, 시나리오, 음악까지 1인 5역의 독보적 활약을 선보였다. 올여름에는 국내 초연 뮤지컬 ‘비틀쥬스’의 타이틀롤로 다시 관객을 만난다.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열린 라운드 인터뷰에서 그는 “연습 초반에 캐릭터를 구축하기까지 3~4주간 많이 힘들었다. 제가 무대에 서온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작품 속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이 많았다”면서 “하지만 캐릭터를 분석하고 작품에 온전히 몰입하자 너무 재밌고 신나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를 정도다. 지금은 무대에 설 시간만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오는 18일 개막해 8월 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비틀쥬스’는 1988년 제작된 팀 버튼 감독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사고로 유령이 된 부부가 자신들의 신혼집에 낯선 가족이 이사 오자 이들을 쫓아내기 위해 유령 비틀쥬스를 소환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2019년 4월 브로드웨이에서 첫선을 보인 뒤 토니상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고 같은 해 외부비평가상(최우수 무대디자인상), 드라마 리그 어워즈(최우수 연출상), 드라마 데스크 어워즈(최우수 무대디자인상) 등 브로드웨이 3대 뮤지컬 시어터 어워즈를 고루 수상했다. 이번에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라이선스 공연이 올라간다.
“비틀쥬스는 98억년을 산 유령이에요. 지독한 외로움 끝에 인간 세상에 나오는 유령은 어떤 감정을 가질지 생각했어요. 너무 외로웠기 때문에 말이 많죠. 그래서 음악 템포도 매우 빨라요. 작품을 꼼꼼히 분석하고 대사를 반복하다 보니 그 감정이 비로소 느껴졌죠. 그런데 무대에서 유령의 템포가 빠르기 때문에 나 자신이 미치지 않고서는 이 느낌을 전달하지 못하겠더라고요.”
1995년 배우로 데뷔한 유준상이 뮤지컬에 처음 출연한 것은 1997년 ‘그리스’. 이번에 그는 ‘그리스’ 때처럼 연습하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임했다. 마스크를 착용한 채 춤추며 연습하는 과정은 심신 단련과 같다. 그는 “요즘 잘 먹는데도 연습을 한 번 마치면 몸무게가 확 준다”면서도 “몸이 가벼워지니 더 잘 움직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식 유머가 강한 ‘비틀쥬스’에 한국 관객들이 호응할지에 대해선 “사실 작품의 스토리는 명쾌한 편으로 외로움을 여행하는 과정을 그렸다. 코로나19 시대에 고립된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준상은 최근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뮤지컬계를 위해 한국뮤지컬협회에 1억원을 기부했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소중한 무대를 지키고 싶어서다. 그는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공연이 계속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공연을 보며 인생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라며 “배우라는 직업은 외롭다. 저도 벌써 50살이 넘었는데, 생각해 보면 외로운 삶을 극복하기 위해 무대에 계속 서는 것 같다. 관객에게 이런 것을 전달하는 게 배우로서 행복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