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 ‘유소작위’의 중국

입력 2021-06-09 04:06

최근 끝난 중국 대입 시험 가오카오(高考)의 작문 주제 중 하나는 ‘가위와 유위’였다. 제시문은 이렇다. “중국 공산당은 100년의 역사를 걸어왔다. 당이 단결해 인민을 이끌어 가는 사회주의 선진 문화는 이미 우리 핏줄에 깊숙이 녹아 있다. 우리의 미래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새로운 길에 융합될 것이다. 우리는 매우 유망한 시대에 놓여 있다.”

‘가위’는 할 수 있는 일, 중국 고전 맹자에 나오는 유소작위에서 유래한 ‘유위’는 해야 할 일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뤄낸다는 뜻이다. 시험을 치른 1078만명의 중국 수험생들은 중화민족의 부흥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해내야 하는지 써냈을 것이다. 가오카오 작문 제시어는 전 국민적 관심사다. 그해 중국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올해 키워드는 예상대로 공산당 100년이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두 개의 100년이 교차하는 역사적 시기 청년들의 책임에 대해 숙고한 것이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올해 전면적인 샤오캉(小康) 사회를 달성하고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100년이 되는 2049년까지 중국몽을 달성한다는 두 개의 목표를 향해 전력질주하고 있다. 이에 맞춰 중국에선 공산당 역사에 대한 대대적인 학습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중국의 종합 국력과 위상에 걸맞고 중국 발전에 유리한 외부 여론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주 공산당 정치국 집단학습에서 선전 체제 정비를 강조했다. 중국에서 대외 전파 업무는 공산당이 담당한다. 시 주석은 공산당이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매체를 만들어 친화적인 중국 이미지를 알리고 국제 여론을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 발언을 두고 중국이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인정했다거나, 고립을 불러온 전랑외교를 수정할 것이란 분석이 뒤따랐다. 전랑외교는 힘을 과시하는 중국식 외교를 표현하는 말이다. 그러나 중국을 좀 안다는 사람들은 고개를 젓는다. 무결점, 무오류여야 할 시 주석이 외교 정책 실패를 인정할 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정책 실패를 인정한 것이라면 전랑외교를 앞장서 실천한 정부 인사들에 대한 조치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그런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시 주석 발언은 공산당 100년의 성과와 제도적 우위를 서구 민주주의 체제와 비교해 더욱 열심히 선전하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는 분석이 많다. 물론 실체 없는 선전선동이 국제사회에서 먹힐지는 별개의 문제다.

시 주석의 시선은 내년 가을에 열릴 공산당 20차 당대회에 가 있다. 2027년까지 중국을 이끌 당 최고 지도부가 결정되는 자리다. 당 총서기를 겸하고 있는 시 주석은 국가주석 연임 제한이 사라져 이론상 장기 집권하는 데 아무 걸림돌이 없다. 그러나 장기 집권의 정당성은 필요한 법. 시 주석이 올해 공산당 100주년 행사와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사활을 거는 데는 이유가 있다. 공산당 역사 교육의 초점이 시 주석 성과 띄우기에 맞춰져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중국은 이렇듯 안으로는 사상 통제, 밖으로는 선전 강화에 매진하고 있다. 동맹과 함께 대중 압박 전선을 펴고 있는 미국과는 계속 부딪칠 수밖에 없다. 역사와 문화를 둘러싼 한·중 갈등도 더욱 커질 것이다. BTS, 김치, 한복 등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져 나오는 논쟁은 단편에 불과하다. 한국은 이런 중국을 어떻게 대할지 장기 전략이 있는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라는 모호한 말로 규정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엄중하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