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실내악의 역사를 써 온 ‘노부스 콰르텟’(바이올린 김재영 김영욱, 비올라 김규현, 첼로 이원해)이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오는 16~19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쇼스타코비치 현악사중주 15곡을 4일간 릴레이 연주하는 것이다. 국내 최초이자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노부스 콰르텟을 이끄는 김재영은 8일 서울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전곡 연주는 한 작곡가의 삶과 음악세계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된다는 점에서 연주자들을 성장하게 만든다”며 “암울하고 답답한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전곡 연주 도전 대상으로 자연스럽게 전쟁과 억압 속에 살았던 쇼스타코비치를 떠올렸다”고 밝혔다.
쇼스타코비치(1906~1975)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 중 하나다. 구 소련의 독재 치하에 살던 그는 수차례 공개 비판과 숙청 위기에 내몰리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작곡을 이어갔다. 1938년부터 74년 사이에 나온 현악사중주곡 15곡은 영광과 능욕으로 점철된 그의 고단한 삶과 궤를 같이한다. 베토벤의 현악사중주곡 17곡을 ‘구약’으로 부르는 것에 빗대 쇼스타코비치의 15곡을 ‘신약’으로 부른다.
김영욱은 “베토벤에 비해 쇼스타코비치의 현악 사중주곡은 평소 연주 기회가 적은 편이다. 4일간 연속해서 공연하려면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면서 “코로나로 유럽 공연이 모두 취소됐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쇼스타코비치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노부스 콰르텟의 쇼스타코비치는 내년 음반(아파르테 레이블)으로도 나온다. 최근 독일에서 3번과 8번의 녹음을 마치고 지난달 22일 귀국해 같은 펜션에서 자가격리하며 연습을 이어갔다. 이번 전곡 도전은 새 멤버 이원해의 첫 공식 무대다. 지난해 10월 멘델스존 현악 사중주 전곡(6곡) 연주를 끝으로 문웅휘는 한 해 전 입단한 독일 코부르크 오케스트라 첼로 수석에 전념하기로 해 프랑스 국립 페이드 라 루아르 오케스트라 첼로 부수석 출신인 이원해가 합류했다.
2007년 한예종 출신 젊은 연주자들이 결성한 노부스 콰르텟은 ‘실내악의 불모지’ 한국에 실내악의 씨앗을 뿌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2년 뮌헨 ARD 콩쿠르 2위와 2014년 제11회 모차르트 국제 콩쿠르 우승을 거머쥐고 2014년부터 글로벌 에이전시 지멘아우어 소속으로 세계 주요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노부스 콰르텟을 모델로 한 콰르텟도 여럿 생겼다. 지난달 체코 프라하의 봄 국제 콩쿠르 실내악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아레테 콰르텟은 2019년 결성 때부터 김재영이 지도한 팀이다.
코로나로 예술가의 국제적 이동이 어려워지면서 세계 각국 클래식계에서 자국 연주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김재영은 “국내에서 자국 아티스트에 대한 평가가 유난히 박한 편이었다. 해외 연주자보다 실력이 뛰어나도 국제 콩쿠르 우승이나 구미 무대에서 활약이 있어야만 인정하는 분위기였다”며 “코로나를 계기로 달라지곤 있지만, 자국 연주자가 성장하도록 관객이나 기획사 등이 연주 자체를 먼저 평가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