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날이었다. 부다페스트 어디에도 나를 축하해줄 사람이 없어 혼자 자축하기로 했다. 와인은 준비돼 있으니 작은 선물만 준비하면 됐다. 나에게 어울리는 선물을 구매하기에 좋은 가게가 떠올라 지갑을 챙겨 바깥으로 나갔다. 그렇게 이곳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로 향했다. 1년 만에 찾아가는 건데도 지도를 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머릿속에 위치가 선명히 떠올랐다. 길눈이 밝은 나에게 부다페스트는 아담한 도시임이 틀림없다.
설레는 마음으로 가게에 도착했을 때 나는 슬퍼지고 말았다. 코로나19 여파로 손님이 줄어 가게 크기가 반으로 줄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건 종류도 줄어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고르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매출을 올려주고 싶은 마음에 나에게 주는 선물과 더불어 별로 필요하지 않은 물건까지 한가득 골라서 계산을 마치고 나왔다. 양손엔 가득했지만 마음은 잔뜩 비어버린 상태로 길가의 벤치에 앉아 잠시 쉬고 있을 때였다. 가장 번화한 거리를 다니는 부다페스트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부다페스트에는 도통 유행이란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션에 민감한 사람들이 모이는 번화가인데도 유행이라고 느껴질 만한 패션이나 아이템을 찾아낼 수 없었다. 모두 각자만의 개성으로 존재할 뿐이고 자신만의 장점을 뚜렷하게 부각할 뿐이었다.
평소 서울 홍대입구역이나 강남역 근처를 걷고 있으면 내가 얼마나 유행에 뒤처지는 사람인지 온몸으로 느껴져 민망해지곤 했는데 이곳에선 그럴 일이 없었다. 독특한 사람은 존재해도 뒤처지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서로를 평가하지도 않았다. 나는 편안함을 느꼈다. 늘 평가받느라 나만이 소유한 빛깔을 중화시키며 살아온 나 자신을 지워내기로 마음먹었다. 조금 더 과감해지기로 말이다. 모든 것이 허용되는 이 도시에서 온전히 나로서 존재하며 나만이 발광할 수 있는 빛깔을 퇴색시키지 않으며 살기로 다짐했다.
부다페스트(헝가리)=이원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