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미국 상원의원단의 대만 방문이 백신 지원으로 위장한 군사 교류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특히 미 의원단이 정부 전용기가 아닌 미군의 C-17 전략 수송기로 대만에 간 것을 두고 미국이 유사시 대만에 신속히 전력을 투입할 수 있다는 강력한 신호를 중국에 보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외교부는 7일 정례브리핑에서 “미국 의원들이 대만을 방문해 대만 지도자를 만나면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위반했다”며 “중국은 이미 미국에 엄정 교섭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또 “미국은 대만과의 어떠한 왕래도 즉각 중단하고 대만 문제를 신중히 처리하며 대만 독립분열 세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난 4월 비공식 특사단을 대만에 보냈을 때와 비슷한 수준의 반응이다. 대만 매체들이 C-17의 대만 착륙을 두고 ‘유사시 미군 전력 투입 신호’ 해석을 내놓은 것을 감안하면 절제된 발언이라는 평가다. 중국 정부는 코로나19 방역 실패 책임론에 휩싸인 대만 집권당이 의도적으로 중국을 자극해 미·중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보고 대응 수위를 조절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전문가들은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조금씩 무력화하고 대만과 외교 관계를 진전시키면서 중국의 레드라인을 시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뤼샹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위원은 글로벌타임스에 “미 의원단의 대만 방문은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가장 심각한 도발”이라며 “미국이 대만해협에서의 긴장을 고조시킴에 따라 중국군이 행동을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대만 남서부에 인접해 있는 군 순찰대가 대만 수도 타이베이에 더 가까운 북서쪽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군사평론가 쑹중핑은 “C-17 수송기가 대만 공항에 머물던 3시간은 화물을 하역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딱 맞는다”며 “수송기는 대만군 또는 대만의 미국연구소(AIT)를 위한 군수물자를 싣고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C-17의 이륙지가 주한미군 오산기지라는 점에서 미국이 대만 안보위기 때 주한미군 기지를 적극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앞서 미 연방 상원의원 대표단은 전날 한국 오산기지에서 출발하는 C-17을 타고 타이베이 쑹산공항에 도착해 차이잉원 총통 등 대만 정부 고위 관계자들을 만났다. 미국은 정부 인사나 의원들의 해외 방문 때 제공되는 정부 전용기(C-40) 대신 병력과 전투장비를 투입할 수 있는 대형 수송기를 보냈다.
미국은 1979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고 대만과 단교했다. 대신 국내법으로 대만관계법을 제정해 대만 문제에 관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뒀다. 미국이 대만과 통상·문화 등 분야에서 비공식 관계를 유지하고 대만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골자다. 대만 방어를 위한 무기 판매도 포함된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