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톱밥분쇄기에 손이 빨려 들어가는 사고로 왼손을 쓰지 못하게 만든 산업재해는 얄궂게도 18년이 지나 아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고통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5월 김재순(25)씨는 광주의 한 폐기물 재활용공장에서 홀로 파쇄기에 올라가 폐기물을 제거하다 기계 안으로 빨려 들어가 숨졌다. 아버지 김선양(52)씨는 아들을 보낸 아버지이자 18년 전 비슷한 사고를 겪은 산업재해 노동자로 법정 다툼을 시작했다.
광주지법은 지난달 28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폐기물 재활용 업체 대표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김선양씨는 7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또 다른 재순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판부가 법정구속형을 내려준 것 같다. 산재 사망자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씨의 바람과는 달리 산재 사망사고는 하루가 멀다고 발생한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사망사고 속보’에 따르면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7일까지 46일 동안 발생한 산재 사망자는 51명이었다. 경기도 평택항 부두에서 작업하던 이선호(23)씨가 300㎏에 달하는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진 지난달 22일 이후에도 하루 1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하다 숨지고 있다. 조사가 진행 중인 사고까지 포함하면 숫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이 기간 사망 사고가 없었던 날은 13일에 불과했다. 하루 3건의 사망 사고가 발생한 날도 4일(5월 20·27·29일, 6월 4일)이나 됐다. 사망의 주요 원인은 추락사고나 깔림사고, 끼임사고 등이었다. 철골작업을 하던 중 추락해 사망하는 등 추락사고는 18건에 달했고 이씨처럼 깔림사고로 사망한 사고는 11건이었다. 이외에 끼임사고 10건, 매몰 3건, 물체에 맞아 사망한 사고 3건 등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사전 안전조치가 충분했다면 예방할 수 있는 사고들이었다.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은 “사업주들이 비용 절감을 이유로 한 사람에게 여러 일을 시키거나 안전장치 없이 일을 지시하다 보니 사망사고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이씨 사망 사고 관련 특별점검 중간결과를 발표하면서 이씨의 불법 파견 가능성을 언급했다. 김규석 고용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은 “이씨는 ‘우리인력’과 근로계약이 체결돼 있었지만 실질적인 작업 지시는 ‘동방’으로부터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작업 지시는 포괄적으로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원청이 하청 노동자에게 안전보건 조치를 요구할 순 있지만 작업을 지시하면 불법이다. 앞서 유족 측은 이씨가 원청 직원으로부터 별도 작업 지시를 받았다며 불법 파견임을 주장해왔다.
고용부는 사고 직후 동방 평택지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일부도 공개했다. 컨테이너 고정핀 장착 등 전도 방지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고, 중량물 취급 작업을 여러 명이 할 때 지켜야 할 적절한 신호·안내가 없었다는 점을 사고 원인으로 추정했다. 지게차의 활용도 부적절했다고 봤다. 이 밖에 동방 평택지사는 작업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이씨에게 보호구도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했다. 이날 이씨 아버지 이재훈씨는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씨 사망 이후에도 이어진 산재 사망사고를 언급하며 “제 아이가 죽기 전에도, 죽고 나서도 변한 게 무엇이냐”며 절규했다.
전성필 최재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