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대선 공약 평가 설명서

입력 2021-06-08 04:02

대선 후보들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각 후보 캠프에서는 유권자 관심을 끌 수 있는 정책 공약들을 준비하기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 경제가 당면한 저성장 고착화와 양극화 심화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기적과도 같은 정책 공약들이 경쟁적으로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747’ ‘줄푸세’ ‘소주성’과 같은 기막힌 작명 센스는 빠질 수 없다. 타당성과는 무관하게 유권자의 마음만 훔칠 수 있으면 당선에 한발 가까이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한국 경제의 당면 과제를 일거에 해소할 수 있는 기적 같은 정책이 존재할 거라는 기대는 버리는 것이 좋다. 그래도 기대를 버릴 수 없다면 일단 가장 획기적이고 독창적인 정책 공약들부터 하나씩 제쳐놓고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이런 공약을 발표하는 이들은 무책임한 후보일 가능성이 크다. 공약이 독창적이고 획기적인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정말 기적 같은 정책을 발견해냈거나 말도 안 되는 정책이거나, 둘 중 하나다.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는 예술가만큼이나 경제학자들은 새로운 논문을 작성하기 위해 좌절과 실패를 반복하면서 끊임없이 노력한다. 처음 연구자의 길을 걷기 시작할 무렵에는 지금껏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한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거나 독창적인 방법론을 고안해내리라 하는 부푼 기대를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말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발견했다고 생각되는 순간 희열과 두려움이 함께 몰려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전 세계 어느 경제학자도 아직 관련 논문을 발표하지 않았다는 것은 노벨상 후보에 한발 다가서게 될 정도의 엄청난 업적을 이룬 것이거나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에 빠진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 경제학자의 99% 이상은 그렇게 어리석은 실수를 거듭하다 결국 허무맹랑한 꿈을 버리고 기존의 연구 결과물들에 아주 작은 기여를 더해가면서 현실적인 연구 활동을 이어간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획기적인 정책 공약이 제시되면 주위를 한 번 둘러봐야 한다. 다른 국가들에서 비슷한 정책을 펴고 있는 경우가 있는지, 역사적으로 비슷한 정책이 도입된 경험이 있는지, 전 세계 어디에서 단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다면 둘 중 어느 경우인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확률적으로는 무엇이 더 가능성이 클지 너무도 자명하다. 그래도 미련은 남는다. 우리라고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생각지 못했던 정책을 처음으로 시행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지금이 바로 역사적인 순간일 수도 있다.

이처럼 실낱같은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도 국가 경제를 걱정하는 책임 있는 후보라면 획기적인 정책을 전격적으로 도입하려 하진 않을 것이다. 이론적으로 그리고 실증적으로 검증된 정책이라 하더라도 환경에 따라서 예상된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검증조차 되지 않은 정책 효과를 확신하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실험을 자행하는 것은 무모하거나 무책임하거나, 이 역시 둘 중 하나다.

대부분의 유권자는 물건을 살 때 단돈 몇천원을 아끼기 위해 수도 없이 고민한다. 그런데 대선 후보들은 몇십조원, 몇백조원이 소요되는 정책 공약을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고 주창하곤 한다. 질서정연한 자연 현상을 슈퍼컴퓨터로 분석하는 일기예보도 틀리는 경우가 잦은데 하물며 인간의 머릿속에서 고안된 검증되지 않은 경제 정책이 성공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장담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걱정이 앞선다. 결국에는 가장 진부해 보이는 공약이 가장 진정성 있는 정책이 될 수 있다.

안재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