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6월,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한다

입력 2021-06-08 04:04

1994년 3월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총리는 국제적인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와 가진 ‘문화는 숙명이다’라는 제목의 인터뷰에서 서구와 달리 개인이 가족의 일원으로서 존재하는 아시아 문화의 특수성을 근거로 “서구식 민주주의는 동아시아에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 11월 당시 야인이었던 김대중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은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문화란 운명인가’라는 글에서 한 나라의 문화가 한 나라의 운명일 수 없으며 한국은 선택을 통해 민주주의를 한국의 운명으로 만들 것이라고 반박했다.

2021년 한국은 두 개의 큰 숙제를 안고 있다. 첫 번째 과제는 산업화 이후의 한국 경제를 어떻게 혁신시킬 것이냐는 것이다. 대기업 위주의 수출 주도 성장을 추구했던 한국 경제는 대기업이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과정에서 활력을 잃고 양극화되고 있으며 경직적인 노동시장 구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실업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두 번째 과제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성취할 것이냐는 것이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주의를 위한 최소한의 절차적 요건을 갖춘 후 한국의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도약시키는 데 실패하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이기도 하다. 산업화 이후 한국 경제 혁신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발전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산업화에 대한 향수와 미련을 박근혜정부를 통해 청산했듯이 민주화 운동에 대한 향수와 미련 역시 문재인정부에서 청산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가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임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는 바로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자)의 분노다. 586 운동권 세대가 민주화 운동을 통해 권위주의 청산을 이루었지만 삶의 상당 부분을 권위주의 분위기 속에서 보낸 반면 MZ세대로 표현되는 2030은 권위주의에 대한 기억이 없다. 586세대에게 민주주의의 절차적 요건이 성취의 대상이라면 MZ세대에게는 공기처럼 늘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586세대에서 표현의 자유와 인권이 싸워서 얻어낸 것, 그렇지만 여전히 마음대로 쓰려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이라면 MZ세대에게 표현의 자유란 변수가 아니라 상수인 것이다. MZ세대가 문재인정부를 지지했다가 빠르게 이탈한 후 사실상 대표적인 반대 세력으로 등장한 것은 놀랍지 않다. 이들은 산업화의 그림자였던 박근혜 정권과 맞지 않고 민주주의 눈높이에서 봤을 때 문재인정부와도 맞지 않는다.

우리처럼 스스로 민주주의를 쟁취한 국가는 역사적으로 많지 않다. 20세기에 독립한 많은 국가가 권위주의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한국은 예외다. 아직도 많은 나라의 경제가 개발의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우리의 숙제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어떤 식으로 만들고 산업화 이후 정체에 빠진 경제를 어떻게 도약시킬 것인가 여부다. 단순히 독재로부터 자유로운 상태가 아니라 혁신과 창의성을 만들어내는 민주주의를 이루어내야 한다. 자유는 21세기 한국 민주주의의 핵심이고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다. 산업화를 통한 경제 성장과 권위주의 독재를 청산한 민주화가 아니라 훨씬 더 높은 곳에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MZ세대가 행복하면 모든 세대가 행복하겠지만 586세대에 눈높이를 맞추면 모두가 불행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 눈높이를 맞추고 어떤 미래를 향해 달려갈 것인가. 나의 대답은 이렇다. 더 많은 자유, 더 강한 국가, 더 혁신적인 경제다. 더 강한 국가는 더 혁신적인 경제 없이 불가능하다. 더 혁신적인 경제는 더 많은 자유 없이는 불가능하다.

원희룡 제주도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