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주지 못해 죄송” 軍 폐습 대수술 지시

입력 2021-06-07 04:01

문재인(얼굴) 대통령은 제66회 현충일인 6일 군내 성추행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이모 공군 중사와 관련해 “국가가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 군 장병들의 인권과 사기, 국가안보를 위해 병영문화 폐습을 반드시 바로잡겠다”고 강조했다. 이 중사 사건에 대한 문 대통령의 첫 공식 사과다. 문 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군내 악습을 뿌리 뽑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수십년간 이어져 온 부조리한 병영문화의 전면 개편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현충일 추념식에서 “최근 군내 부실급식 사례들과 아직도 일부 남아 있어 안타깝고 억울한 죽음을 낳은 병영문화에 대해 국민께 매우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보훈은 지금 이 순간 이 땅에서 나라를 지키는 일에 헌신하는 분들의 인권과 일상을 온전히 지켜주는 것”이라고 했다. 과거 참전용사에 대한 예우를 강조했던 지난 4년간의 추념사와 다른 기조다.

문 대통령은 이 중사 사건에 대한 입장을 직접 추념사에 넣은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청와대 참모들은 전날 회의에서 추념사에는 보훈 메시지만 담고, 이 중사 관련 내용은 상황을 보며 따로 내자고 건의했다. 이에 문 대통령이 군인들의 인권과 복지가 곧 보훈이라고 강조하면서 ‘병영문화 개선’이 추념사에 담겼다.

문 대통령은 추념식 직후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이 중사의 추모소를 찾아 유족에게 “얼마나 애통하시냐”고 위로했다. 문 대통령이 군을 향해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직접 추모소 방문을 결정했다고 한다.

이 중사 부친이 “딸의 한을 풀고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고 하자 문 대통령은 “철저하게 조사하겠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서욱 국방부 장관에겐 “이번 일을 계기로 병영문화가 달라지도록 하라”고 재차 지시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현충일에 이 중사 추모소를 방문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만큼 이번 사건이 보훈과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병영문화 개선 필요성을 수차례 언급해왔다. 그럼에도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 3일 이 중사 사건에 대해 “지휘라인 문제도 살펴보고 엄중하게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4일 이성용 공군참모총장이 사의를 표명하자 80분만에 수리했다.

문 대통령은 다만 “나는 우리 군 스스로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변화하고 혁신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믿는다”며 군에 다시 한번 힘을 실어줬다. 문 대통령은 추념사 내내 자신을 ‘저’라고 낮춰 불렀다.

반면 군 개혁을 강조하는 부분에선 ‘나’라고 지칭했다. 문 대통령이 국군통수권자로서 군에 강한 개혁 드라이브를 요구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청와대는 국방부가 곧 내놓을 병영문화 개선방안을 직접 챙길 계획이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