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자영업자·소상공인 손실보상제’가 이달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올해 초 문재인 대통령은 손실보상 제도화를 지시했지만 여야와 정부의 입장이 계속 엇갈리며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나 여야가 지난 4일 이달 중 코로나19 손실보상법이 처리되도록 노력하기로 합의하면서 입법 논의가 속도를 낼 전망이다.
손실보상제의 문제는 ‘디테일’에 달려 있다. 손실보상에 대한 지원 근거를 어디까지 규정할지, 손실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무엇을 근거로 보상액을 책정할지, 과거 손실까지 소급적용할 것인지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제도 목적과 소요 재원이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
무엇보다 정치권에서 나오는 ‘한국형 손실보상제’는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형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에 손실보상 ‘의무’를 지우는 것은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 손실보상 청구권을 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정부는 청구권을 갖게 된 이들이 대거 소송을 벌여 추가 보상을 요구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찾기 힘든 제도
정치권에서 손실보상제 도입 목소리가 나오자 정부는 가장 먼저 해외사례를 검토했다. 주요 해외국 중 손실보상 ‘의무’를 법제화한 국가는 없었다. 프랑스·일본만 법률로 재정지원의 근거를 ‘선언적’으로 규정했을 뿐이다.
프랑스는 지난해 3월 제정한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긴급법’에 “지원을 할 수 있다”고만 규정했다. 일본도 올해 2월 개정한 ‘신형인플루엔자 등 대책 특별조치법’에서 “필요한 재정상 조치를 효과적으로 강구하도록 한다”고 명시했다. “해야 한다”는 식으로 의무를 규정하기보다 재정지원의 근거를 신설하는 선에서 타협을 한 것이다. 세부 지원기준을 시행령에 위임하는 식의 세부 규정도 두지 않았다.
지원 방식과 규모도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되는 편이다. 프랑스와 독일은 매출액을 기준으로 줬다. 독일은 전년 같은 기간 매출액의 75%를 지원했고, 프랑스는 100%를 지원하되 한도(월 1만 유로 또는 전년 월매출의 20%)를 설정했다.
영국은 임대료를 기준으로 지원금을 지급했다. 임대료를 세 구간으로 구분해 임대료를 많이 내는 업체일수록 고액의 정액 지원금을 줬다. 일본은 영업시간 단축 대상지역 음식점에 정액 지원(하루 6만엔, 월 최대 186만엔)을 하며 속도에 중점을 뒀다. 미국은 매출과 임금을 기준으로 하되 주로 대출 지원 쪽에 초점을 맞췄다.
이들의 공통점은 국가에 손실보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가는 불가피한 영업 제한 상황에 처한 이들을 ‘지원 할 수 있는’ 존재였고, 지원도 시혜적인 차원에서 접근했다. 앞서 세 차례 지급했던 한국의 자영업자·소상공인 대상 재난지원금(새희망자금·버팀목자금·버팀목플러스자금)과 오히려 더 유사하다고도 볼 수 있다.
한국형 제도, ‘판도라의 상자’ 될까
현재 국회 관련 상임위원회에 발의된 손실보상제 법안은 30개 가까이 된다. 자영업자·소상공인에 보상하는 것은 국가의 ‘시혜적 조치’가 아닌 ‘헌법상 의무’로 보는 것이 핵심이다. 헌법 23조3항에서 “공공의 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 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해야 한다”고 보장하고 있다는 게 주장의 근거다. 손실보상제 법안 대부분에도 “손실을 보상하여야 한다”는 국가의 ‘의무’가 가장 먼저 명시돼 있다.
일단 여야는 손실보상심의위원회를 설치하는 것, 손실보상법 산정 기준은 영업이익으로 산출하되 구체적인 지원방안은 시행령(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 등에 의견을 모은 상태다. 하지만 소급 범위, 보상의 규모와 범위, 지원 체계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제도는 크게 달라진다. 따라서 법제화 자체보다 시행령을 구체화하는 과정이 더욱 까다로울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관계자는 6일 “제도를 엉성하게 만들어서는 정책 실행으로 못 옮긴다”며 “기준의 적절성 여부 등을 소상공인·자영업자가 문제 삼기 시작하면 논의가 한도 끝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소득 파악 시스템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종합소득세·부가가치세 신고는 매해 신고하는 횟수도 적고, 영세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한 사각지대도 여전하다. 손실 대상·규모를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은 정부가 산정한 보상액에 불복하는 이들이 속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급적용도 과거 손실을 증명하는 게 훨씬 까다로울뿐더러 추가 소요 재원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부터 수차례 지급된 재난지원금을 받은 사업장에 대한 중복지원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집합금지·영업제한 대상이 아닌 일반 업종과의 형평성도 문제다. 코로나19로 인한 ‘직접 피해’와 ‘간접 피해’를 구분하긴 쉽지 않다. 예컨대 관광·여행업은 집합금지·영업제한에 해당하지 않지만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다. 유흥업종 지원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논란거리다.
여야는 8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 소위원회를 열어 손실보상법 심사를 재개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손실보상법을 소급적용하는 대신 맞춤형 피해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피해지원금 지급안은 7일 당정 협의와 8일 산자위 논의를 거쳐 구체화할 계획이다. 협의가 차질없이 진행된다면 이르면 7월 전국민재난지원금과 함께 맞춤형 피해지원금도 지급될 전망이다. 하지만 민주당 내 일부 의원과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손실보상법 소급적용 안을 고수하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세종=신재희 기자, 오주환 기자 jshin@kmib.co.kr
[스토리텔링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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