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그릇된 젠더인식·은폐 폐습 병영문화 싹 다 바꿔야

입력 2021-06-07 04:01
공군 소속 여군 성추행 피해 사건과 이를 은폐한 군 수뇌부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급기야 군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현충일 추념사에서 “억울한 죽음을 낳은 병영문화의 폐습에 대해 국민께 매우 송구하다”면서 이를 바로잡겠다고 밝혔다. 여군 사망 뒤 가해자가 구속되고 공군참모총장까지 물러났지만 단순히 가해자 처벌과 수뇌부 몇을 문책하는 것으로 끝낼 사안이 아님을 대통령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대통령 말대로 병영문화의 폐습을 없애지 않는 한 같은 일은 언제든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이참에 전근대적이고 반인권적인 군 문화를 대대적으로 뜯어고쳐야 할 것이다.

그동안 군은 대표적인 인권 사각지대였다. 상명하복이라는 특수성을 내세워 육체·정신적으로 괴롭히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하급자들이 정당한 문제제기를 해도 묵살하기 일쑤였다. 여군이 1만3000명이지만 여전히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하지 않는가 하면 그릇된 성(性) 인식으로 동료 여군을 바라보는 남성 군인들도 적지 않았다. 이번에 숨진 여군을 여러 명이 성추행한 것도 그런 잘못된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병영문화 개선은 이런 인식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돼야 한다. 모든 군인이 제대로 인권을 보장받아야 하고, 여군에 대한 대우와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 개별 군인에 대한 존중과 인격적 대우는 군 전체 사기와도 직결된다.

군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때마다 조직의 폐쇄성에 기대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보고 또는 축소발표해온 잘못된 관행도 뜯어고쳐야 한다. 군이 뭘 발표하기만 하면 국민의 첫 반응이 “못 믿겠다”거나 “뭘 또 숨긴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군은 북한 주민 귀순 사건이나 각종 사고 발생 때마다 비난받을 만한 내용은 숨기는 데 급급했다. 그런 은폐문화가 허위보고를 낳고 결국 더 큰 문제를 야기해 왔다. 숨진 여군의 성추행 피해도 사실 그대로 제때에 보고됐더라면 극단적 선택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최근 군 부실 급식 사태도 숨기려다가 더 큰 문제로 비화됐다. 안보와 관련된 게 아니라면 군에서 생기는 일들도 최대한 투명하게 처리돼야 한다. 처벌이나 비난이 무서워 숨기고 왜곡하는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 군의 생명과도 같은 보고마저 절반을 잘라먹고 보고한다면 과연 군이 제대로 굴러갈 수 있겠는가. 이번에 제2창군을 한다는 자세로 군 문화 전반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더 이상 국민에게 어처구니없는 소식을 전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