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 시동 꺼지는 벤츠, 분통 터지는 ‘새로운 경험’

입력 2021-06-07 04:02

수입차 업계의 신차 광고에 실리는 단골 문구가 있다.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new experience)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궁금하면 일단 타보라고 권유하는 듯한 이 문구는 고객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기 충분하다.

최근 시동 결함이 잇따라 발생한 메르세데스-벤츠 마일드하이브리드(MHEV)의 차주들도 구입 당시에는 설레는 마음만 가득했을 테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브랜드로 알려진 벤츠인 만큼 회사에 기대하는 사후 관리 수준도 상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차주들이 벤츠가 말한 새로운 경험이 전혀 다른 의미였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한 차주는 배터리 교체를 포함해 네 차례나 차량을 정비소에 맡겨야 했다. 이 차주는 본보와 인터뷰 도중 벤츠코리아 측으로부터 “독일 본사에서 다시 배터리를 교체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으니 한 번만 더 타보라”는 안내를 받고 분통을 터뜨렸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수리 방법이 없으면 환불해주겠다”는 답변과 달랐기 때문이다.

“결함이 재발하지 않느냐”는 차주의 질문에 벤츠코리아 측은 “100%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애매한 대답을 내놓았다. 차주는 “독일 본사에서 내려왔다는 대응 매뉴얼을 직접 보고 싶다”고 요청했지만 내부 자료라는 이유로 이마저도 거절당했다고 한다.

언제 멈출지 모르는 차를 타고 불안감 속에 다시 고속도로를 내달려야 하는 이 차주는 “본사의 허술한 대응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차량 수리를 요청하다 갈등만 격화해 벤츠 판매사 직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사례도 나왔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4일이 돼서야 뒤늦게 결함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카카오톡 단톡방에 모인 약 70여명의 결함 차주들이 보상받을 길은 여전히 험난하다. 일본은 같은 결함으로 일찌감치 리콜을 실시했지만 국내에서 ‘단순 시동 꺼짐’은 리콜 사유로 충분치 않다. 차주들은 “누군가 주행 중 시동이 꺼져 다치거나 죽어야 리콜을 요청할 수 있는 거냐”고 토로한다. 이들은 더 이상 새로운 경험을 원치 않는다.

최지웅 산업부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