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신안교회(정준 목사)가 발행한 상품권은 여느 백화점 상품권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상품권에 교회가 그려져 있는 게 가장 다른 부분이었다. 액면가는 1만원이다. ‘소상공인 상점 이용 지역사랑 상품권’이라는 이름을 쓴 뒤 위조방지용 홀로그램 스티커도 붙였다. 상품권 인쇄는 상품권만 전문적으로 만드는 인쇄소를 이용했다.
교회는 코로나19로 침체한 지역 상권을 살리기 위해 상품권 5000장을 발행했다. 이 중 1000장은 예배에 참석한 교인들에게 나눠줬고, 나머지는 30% 할인된 가격에 교인들에게 판매했다. 한 명이 최대 20장씩 살 수 있도록 제한했다. 14만원을 내면 20장을 사는 식이다.
상품권을 사용할 수 있는 40여개 가맹점도 확보했다. 이를 위해 장로와 목회자들이 교회 인근 가게를 일일이 방문해 의향을 물었다. 대기업 프렌차이즈는 제외했다. 소규모 가게들에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분식과 프라이드 치킨 등을 파는 식당과 방앗간, 카센터, 마트, 미장원 등이 선정됐다.
교인들은 지난달 1일부터 상품권을 사용했다. 9일까지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은 대부분 유통됐다고 한다. 상품권은 교회와 가까운 광주신안신협에서 현금으로 교환할 수 있도록 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점주들을 위한 배려였다.
1925년 설립한 교회는 올해 96주년이 됐다. 코로나19로 지역사회가 힘겨워하는 걸 보며 뭐든 하자는 공감대가 교인들 사이에 형성됐다고 한다. 100년 가까이 동행한 지역사회를 위로하려는 마음도 컸다.
정준 목사는 6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에 빠진 교회 인근 가게들을 어떻게 도울까 고민하다 상품권을 발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며 “막상 해보니 교인들도 보람이 크고 지역사회에서도 반응이 좋아 기쁘다”고 말했다. 정 목사는 “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상품권만 사용한 게 아니라 그 이상 소비했다”며 “일부 교인은 거스름돈도 받지 않으려 해 오히려 가게 주인들이 손사래를 치며 거스름돈을 내준 일도 있었다고 들었다. 그만큼 취지에 공감한 교인들이 헌신하는 마음으로 착한 소비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신안교회가 발행한 상품권 소식은 이미 전국 교회로 퍼졌다. 서울 관악구의 한 교회는 최근 액면가 만원권 상품권 1만장을 발행하기로 했다. 신안교회는 상품권 제작과 지역 신협과 협조하는 데 필요한 노하우를 전수했다고 한다.
교회는 상품권 발행을 이어갈 예정이다. 앞으로는 지역의 여러 교회와 연합해 발행 규모를 키우는 걸 검토하고 있다. 정 목사는 “교회들이 힘을 모아 상품권을 발행한다면 광주 전체에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로 본다”며 “무너진 한국교회 신뢰를 다시 쌓는 작은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도 크다”고 밝혔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