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이었을 때 이혼 후 딸 하나를 어렵게 키우고 계신 싱글맘 가정의 과외 선생님 노릇을 했던 적이 있다. 벌써 고2인데 세상에 나갈 준비가 턱없이 부족해 보이는 아이와 매주 두 번씩 얼굴을 마주하며 아이의 앞날을 걱정했었다. 아이 어머님과 얘기를 나누고 싶어 몇 번 뵙기를 부탁드렸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으셨던지 결국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셨다.
꽤 오래전 일인데 엄마가 딸에게 잘못된 조언을 주고 있다는 생각에 저릿했던 기억이 아직 또렷하다. 세밀한 사연은 모르지만 “여자는 남자만 잘 만나면 돼”라는 말을 많이 하셨던 모양이다. “그러면 어떤 남자를 만나면 좋을까?”라는 내 질문에 아이는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혼자서도 잘 살기를 바라는 대신 좋은 남자를 만나야 한다고 하셨으면 좋은 남자를 ‘어떻게’ 찾을 일인지도 같이 고민해주실 것이지라는 원망이 컸었다.
지금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그때 그 비난이 나를 향하고 있는 걸 느낀다. 아이의 기질과 성격이 나를 너무 닮았는데 시댁 식구들 눈에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니, 빤히 보이는 진흙탕 길을 아이가 덜 가도록 도울 사람은 나뿐이다. “엄마처럼 하면 안 된다”는 말 대신 내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해줄 수 있을까. 본성을 거슬러 어설픈 시도와 또 다른 시행착오를 겪게 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해볼 수 있는 일이라면 내가 먼저 변해보려 오래된 습관을 바꿔보고 있다. 싫어하는 음식을 먹어보고, 싫어하던 사람과 친해보고, 앞만 보지 말고 주변도 살펴보고.
이왕이면 결국 어떠했는지 알려주고 싶은데 아직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미운 내가 너무 많다. 또 자각조차 못하고 있는 나쁜 습성은 어떻게 할 건가. 어렵다며 들고 오는 문제에 대해 “이런 건 몰라도 돼”라고 무심히 하는 말들이 아이에게 실패의 기술을 전해주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윤소정 패션마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