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용(사진) 공군참모총장이 4일 성추행 피해 부사관 사망 사건에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고 상급자까지 지휘라인 문제도 살펴보라”고 지시한 지 하루 만이다. 문 대통령은 이 총장의 사의를 즉각 수용했다. 경질한 셈이다. 군 당국은 사실상의 합동수사단을 꾸려 전방위 수사에 돌입했다.
이 총장은 오후 1시40분쯤 “일련의 상황에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의를 표명하는 입장문을 냈다. 그는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사과드린다”면서 “무엇보다도 고인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며, 유족분들께 진심 어린 위로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이 총장의 사의 표명은 피해자 이모 중사 성추행 사건이 발생한 지 3개월, 이 중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약 2주 만이다. 공군의 부실한 초동수사와 지휘부의 사건 은폐 의혹까지 불거지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3일 “절망스러웠을 피해자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며 지휘라인 책임 문제까지 거론하자 사퇴 외에 선택지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사의 표명을 한 지 80분쯤 뒤인 오후 3시 문 대통령의 사의 수용 결정을 발표했다. ‘일사천리’ 사의 수용으로 이번 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엄중한 인식을 재확인한 셈이다. 지난해 9월 취임한 이 총장은 재임 255일 만에 불명예 퇴진하며 ‘역대 최단명 총장’이라는 오명도 남기게 됐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서욱 국방부 장관의 경질 가능성에 대해 “최고 지휘라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고 했다. 사건의 파문이 커지고 있는 만큼 군 수뇌부에 대한 추가적인 조치가 잇따를 수 있음을 예고한 것이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성추행이 발생한 공군 제20전투비행단에 성범죄수사대를 급파했다. 수사대는 20비행단 현장에 상주하며 공군 군사경찰의 부실한 초동수사 의혹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이 중사가 생전 20비행단 근무 당시 다른 상관에게도 최소 두 차례 더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며 유족 측이 고소장을 제출한 만큼 이 부분에 대한 수사도 함께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방부 검찰단은 공군본부 군사경찰단, 20비행단과 제15특수임무비행단 군사경찰대대, 공군본부 양성평등센터에 대해 동시다발적인 압수수색을 벌였다. 이 중사의 피해 신고 접수 후 군사경찰 조사 과정에서 공군본부 군사경찰단에 해당 사건 보고가 이뤄진 경위를 포함해 사건 축소·늑장 보고 의혹을 입증하기 위한 증거 확보에 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15비행단은 이 중사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직전 전속한 부대라는 점에서 사망 전후 관련 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압수수색으로 해석된다. 유족은 이 중사가 15비행단에서 일부 간부들에게 ‘관심 병사’ 취급을 받는 등 2차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피해자에 대한 또 다른 범행과 은폐, 회유 등에 가담한 관련자들의 추가 구속 가능성도 거론된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