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식량가격이 이례적으로 12개월 연속 상승하면서 농축산물 가격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야기하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 공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석유 등 원자재발 가격 상승과 맞물리며 전체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어 코로나19, 부동산 문제로 얇아진 서민들의 지갑 사정을 더욱 옥죌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3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20.9포인트로 전월 대비 1.7% 상승했다. 세계식량가격지수는 FAO가 24개 주요 식량 품목의 국제가격동향을 토대로 발표하는 지수다. 2014~2016년 평균 가격을 100.0포인트로 삼아 산정한다. 식량가격 추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로 꼽힌다. 최근 이 지수의 흐름이 심상찮다. 지난해 5월(91.0포인트) 이후 1년 연속 상승세가 꺾이지 않는다. FAO가 지수를 집계하기 시작한 1990년 이후로 15개월 연속 상승한 2007년 1월~2008년 3월 이후 두 번째로 긴 기간 동안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아직 최고점을 찍었던 2011년 2월(137.6포인트)과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기는 하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상승한다는 점은 경제적으로 봤을 때 위협적인 신호다. 2007~2008년에는 식량가격 상승이 통화가치를 하락시키는 인플레이션 발생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상승 곡선을 그리는 이유도 유사하다. 선물 거래가가 기준인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작황 전망에 따라 요동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옥수수의 경우 파종 면적 추정치가 예상보다 낮고 중남미 작황 부진 우려가 지수에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국제곡물가격 상승은 수입산 재료를 사용하는 가공식품의 소비자가격을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라면이다. 농심 등 라면 3사는 국제 밀·팜유 가격이 오르자 소비자가격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라면에 들어가는 팜유 선물가격의 경우 이달 초 기준 t당 961달러로 2011년 8월 이후 9년여 만에 최고가를 기록했다. 축산물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하다. 옥수수 등 사료용 곡물가격 인상은 축산물가격 인상으로 이어진다. 마트에서 판매하는 소고기나 돼지고기 가격을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다.
외부 요인에 덜 민감한 국내 신선 농산물가격까지 급등하는 상황이라 애그플레이션 걱정이 더 커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6% 상승하며 2개월 연속 2%대 상승 폭을 그렸다. 9년여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뛰어올랐다. 전년 동월 대비 45.4%나 상승한 계란 가격을 포함해 농축산물 영향이 적지 않다. 100% 국산 자급률을 자랑하는 쌀도 이에 포함된다. 지난 2월 오뚜기가 컵밥 가격을 올리고 CJ제일제당이 햇반 가격을 올린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현 시점만 봤을 때 애그플레이션이라고 규정하기는 이르다는 의견도 나온다. 2007~2008년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국승용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본부장은 “당시에는 식량 재고가 밑바닥을 쳐 가격이 올랐지만 지금은 밀 재고율이 40%일 정도로 여유가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지금의 가격 상승은 식량보다는 유동성이 많이 풀리면서 통화 가치가 하락해 가격이 오른 영향이 더 커 보인다”고 진단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