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아동 인권을 위해 일하던 수잔나 라라소(56)는 미얀마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소속으로 2015년 국회에 입성했다. 그는 동료 의원들과 자유롭게 의회 활동을 이어갔고 주일이면 국회에서 제공하는 차량으로 교회에 가서 예배도 드렸다. 지난해 11월 총선에선 재선에도 성공했다.
평화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지난 2월 양곤 자택에 머물던 라라소는 피난길에 올랐다. 당시 상황은 긴박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요란한 소리를 듣고 위험을 직감했다. 창밖을 보니 100여명의 군인이 집 앞을 둘러싼 채 대문 자물쇠를 부수고 있었다”고 전했다.
뒷문으로 빠져나와 몸을 숨겼고 제자의 차량을 탄 채 양곤 외곽으로 피신했다. 가진 거라곤 입고 있던 옷이 전부였다. 신발도 없었다. 군부 쿠데타였다.
이후 매 순간 고비를 경험했다. 피신해 있던 카렌주 파뿐지역에 군대가 폭탄을 투하하면서 마을사람들과 함께 밀림 안으로 들어갔다. 화장실도 물도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챙겨온 음식으로 겨우 버텼다. 건강도 악화됐다. 그사이 군부에 맞서 미얀마 국민통합정부(NUG)가 출범했다. 라라소는 미얀마 역사상 처음 만들어진 여성청소년아동부 초대 장관으로 추대됐다.
절망에 빠질 법했지만 라라소 장관은 무너지지 않았다. 의지하고 믿는 게 있었다. 하나님 사랑이다.
지난달 29일 화상회의 플랫폼 줌으로 만난 라라소 장관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게 있다. 사랑”이라며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축복해 주시고 자유와 함께 살 수 있도록 해 주실 것임을 믿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인터뷰는 태국 국경에서 카렌 난민을 위해 사역 중인 오영철 선교사를 통해 성사됐다. 한국과미얀마연대 조모아 대표가 통역을 도왔다.
카렌족인 라라소 장관은 1965년 양곤주 인세인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가족들의 핍박에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라라소 장관의 부모도 카렌주에서 온 아이들을 양육하는 등 자선 사업을 했다.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란 라라소 장관도 양곤대학에서 동물학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는 동안 NGO 월드비전에서 자원봉사를 했고 대학 졸업 후엔 직원으로 일했다. 이후 라라소 장관은 월드비전의 후원을 받아 미국 필라델피아의 기독교대학 이스턴대에서 NGO리더십 MBA 등을 공부했다.
고국에 돌아와 2003년부터 KWAG(Karen Women’s Action Group)에서 카렌주 여성들의 권리를 위해 일했다. 2012년 국제 NGO인 인터액션에서 ‘탁월한 리더십’상을 받았고 미얀마 여성단체 네트워크(WON) 의장으로 활동하며 유엔, 국제 NGO 등과도 협업했다. 남편인 여할렐렐 목사는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미얀마에서 학교를 운영했다.
라라소 장관은 미얀마 상황부터 설명했다. 미얀마는 의사와 교사들이 감옥에 갇히거나 국경으로 피신하면서 의료와 교육 시스템은 사실상 붕괴됐다. 사람들이 숨어든 밀림과 국경도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라라소 장관은 “우기가 시작됐다. 밀림은 비가 쏟아지면 홍수가 발생하는 위험한 곳”이라며 “국경 지역도 군부가 수시로 폭격을 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여성과 아동의 피해는 더하다. 라라소 장관은 “잡혀간 여성을 성폭행하는 경우가 있다”며 “어린이도 현재까지 73명 사망했다. 어머니 품에 숨어있던 아이에게도 총탄을 쏜다”고 군부의 폭압을 고발했다. 그는 “장관 직책을 받은 뒤 하루도 쉬지 못했다. 무엇보다 군경의 폭력적 행위로 피해를 입는 여성과 아동의 상황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얀마 민주화를 지지해 주는 한국 정부와 한국교회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기도제목도 공유했다. 그는 “한국 국민이 미얀마의 민주화를 응원하고 모금을 해 주고 기도해 주고 계신다는 걸 알고 있다”며 “우리가 힘을 낼 수 있도록 힘을 주신 분은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정의를 위해 싸우셨고 우리도 정의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도제목을 묻자 가장 먼저 나온 단어는 ‘평화’다. “미얀마에 하루빨리 평화가 올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국민들의 고통이 끝날 수 있도록, 구금돼 있는 지도자들이 풀려나 민주국가를 세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예수님의 사랑을 모든 사람이 알고 서로서로 더불어 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