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 위반, 감독 부실… 예비신랑 앗아간 호텔 수영장

입력 2021-06-04 04:09
지난 3월 4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호텔 수영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 당시의 CCTV 영상. 당시 호텔 수영장에는 안전요원이 1명도 없었다. 유족 측 제공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 호텔 수영장에서 30대 남성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 관할 구청이 3개월이 지나서야 호텔 측의 안전요원 미배치 과실을 확인하고 경찰에 고발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강남구청은 3일 호텔 측이 수영장 사망사고가 발생했음에도 관할 구청에 신고하지 않았다며 해당 호텔을 전날 서울 강남경찰서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강남구청은 호텔이 수영장 안전요원을 1명밖에 채용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적발해 행정지도를 내리기로 했다. 현행 체육시설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호텔은 수영장에 최소 2명 이상의 안전요원을 상시 배치해야 한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안전요원을 채용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과태료 부과 등의 조치도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4일 박모(34)씨는 청담동의 한 호텔을 찾았다. 내년 봄 결혼 예정이던 여자친구가 퇴근 후 호텔로 오기로 돼 있었다. 박씨는 혼자 체크인을 하고 오후 5시쯤 호텔 수영장을 이용했다. 20여분간 수영을 하던 박씨는 갑자기 의식을 잃었고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18분가량이 지나서야 수영장 이용객이 박씨를 발견해 호텔에 알렸지만 박씨는 이미 호흡이 멎은 상태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사인은 익사였다.

유족 측은 “안전요원만 제대로 있었다면 살 수 있었다”고 했다. 박씨가 현기증으로 추정되는 이유로 의식을 잃었을 때 안전요원이 있었다면 익사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호텔 측은 유족에게 “안전요원이 사고가 있었던 시각에 식사를 하러 가 자리를 비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찰이 박씨 타살 가능성을 조사하며 CCTV 영상을 확인하던 중 안전요원이 수영장에 배치되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유족 측은 호텔 측의 사과를 요구하며 지난달 21일부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호텔 측은 뒤늦게 안전요원을 1명만 채용한 사실을 인정했다. 강남구청의 시정명령에 따라 안전요원 추가 채용 공고를 올리고 유가족에게도 사과했다고 해명했다.

구청도 관리·감독 의무에 소홀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박씨의 아버지는 “사고 발생 이후에 강남구청에 해당 호텔의 수영장 안전요원 고용 현황을 물었는데, 구청에서는 유족 측의 문의가 이뤄진 뒤에야 호텔 현장조사를 했다”고 말했다. 사고 발생 이후 한 달이 지났을 때다. 유족 측은 지난달 31일 강남경찰서에 호텔 관계자를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경찰은 호텔 과실이 확인된 만큼 정식으로 입건해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