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펀드·채권 쏟아내지만… “기존 일반 상품과 별 차이 없네”

입력 2021-06-03 04:07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열풍이 불면서 금융권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관련 투자 상품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ESG 개념 자체가 모호한 측면이 있는 데다 명확한 평가 기준도 부족해 기존 상품과 차별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ESG 펀드는 같은 ESG 펀드는 물론이고 기존 펀드 상품과도 구성 종목에 별 차이가 없다. ‘삼성전자 바라기’가 대표적인 현상이다. 2일 기준 키움투자자산운용의 주식형 펀드 ‘키움올바른ESG증권투자신탁’은 삼성전자 보유 비중이 25.27%로 가장 많고, SK하이닉스 6.69%, 네이버 4.66% 등 순이었다. 우리글로벌자산운용의 ‘우리G코리아ESG증권자투자신탁’도 상위 구성 종목이 삼성전자 25.8%, SK하이닉스 7.65%, 현대차 5.05%다.

심지어 삼성전자를 주로 담는다고 표방한 펀드 상품보다 삼성전자 보유 비중이 높다. BNK자산운용의 ‘BNK삼성전자중소형증권투자신탁’의 삼성전자 비율은 23.45%이고 엔씨소프트 4.93%, 네이버 2.95% 등으로 구성돼있다. 물론 삼성전자의 ESG 경영이 잘 이뤄지고 있다는 판단이 있을 수 있지만, ‘ESG 딱지’만 남발한다는 지적도 커지고 있다.

ESG 채권도 비슷한 상황이다. 정부의 ESG 강화 기조에 따라 금융기관과 공기업, 민간기업은 최근 녹색 채권, 사회적 채권, 지속가능 채권 등을 우후죽순으로 발행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와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ESG 채권 발행액은 총 54조원 정도였고, 올해는 4월 말 기준 29조원 가량이다. ESG 인증을 받은 채권을 발행하는 공기업(주택금융공사, 한국장학재단, 예금보험공사, 신용보증기금, 중소벤처진흥공단 등)들이 늘었고, 민간기업과 금융기업도 ESG 투자 확대를 위해 관련 채권을 많이 찍어내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ESG 채권은 환경, 사회, 지배구조 개선 관련 인증을 받은 점 외엔 만기나 신용도, 투자 매력 등에서 일반 채권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자본연 분석에 따르면 민간기업의 ESG 채권 만기는 기존 회사채와 비슷한 3~7년 정도였다. ESG 채권의 신용등급도 A등급 이상이 100%에 가깝다. 김필규 자본연 연구위원은 최근 관련 보고서에서 “채권을 통해 조달한 자금도 신규 ESG 투자보다 기존 사업에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도 지적했다.

ESG 채권이라고 해서 수요가 특별히 높은 것도 아니다. 일례로 민간기업 발행 ESG 채권과 일반 채권의 올해 수요예측 경쟁률은 비슷한 수준이다. 김 연구위원은 “다양한 기업의 신규 ESG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ESG 채권이 활발히 발행돼야 한다”며 “투자자 확대를 위해 기관투자자들의 사회책임 투자기준을 마련하고, 투자자 인센티브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결국 ESG 평가 체계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게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ESG 평가는 비재무 정보를 기반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어서 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이인형 자본연 연구위원은 “ESG 관련 투자 자금의 급속한 이동을 고려할 때 평가 기준이 없으면 자원 배분의 왜곡과 불안전 판매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주요국에서 지속가능 관련 공시 체계와 ESG 평가 기관에 대한 규제 등 해결책이 마련되고 있어 우리나라도 ESG 평가 체계 개선이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