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명품 브랜드의 가격 인상이 잇따르고 있다. ‘비쌀수록 더 사고 싶다’는 명품을 향한 소비심리가 식지 않으면서다. 가격 인상 요인이 뚜렷하지 않고 수시로 가격을 올리는 데도 수요는 오히려 증가 추세다. 명품 제품을 사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매장 앞에 줄을 서는 ‘오픈런’은 흔한 풍경이 됐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글로벌 명품 시장이 위축됐으나 우리나라에선 건재를 과시했다.
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루이비통, 에르메스를 비롯해 프라다, 보테가베네타, 버버리 등 명품 브랜드가 지난 5개월 동안 1~5차례 제품 가격을 올렸다. 샤넬과 루이비통이 조만간 일부 제품 가격을 또 올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명품 업계는 가격 인상 요인이 작동했기 때문에 값을 올리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주요 인상 요인으로는 원가 상승, 환율 변동, 비용 증가, 본사의 글로벌 가격 정책 변화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각종 요인을 다각도로 고려해 가격을 올렸다기엔 너무 자주, 불시에 인상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루이비통은 지난해 7차례, 올해 이미 5차례 산발적으로 가격을 올렸다. 가격 인상 폭도 들쭉날쭉이다. 명품 브랜드 가격은 연간 5~6% 인상되는 게 일반적이었으나 지난해부터는 5~50%로 인상 폭이 커졌다.
‘불친절한’ 가격 인상이 잇따르는 데도 명품 소비층 사이에서는 오히려 ‘제품이 없어 못 산다’는 푸념이 나온다. 마음에 드는 제품을 사기 위해 새벽같이 오픈런을 감행해도 허탕을 치는 일이 부지기수다. 오픈런까지 해가며 대여섯 시간 대기해도 제품을 구하는 게 힘들어지자 ‘오픈런 대행업체’까지 등장했다.
명품 소비 확대를 이끄는 중심에는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가 있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과시하는 ‘플렉스’ 문화, 가성비와 프리미엄을 동시에 추구하는 소비 성향이 명품에 대한 심리적 진입 장벽을 낮췄다.
중고 판매 시장이 커진 것도 한몫 거들었다. 리셀(되팔기) 시장을 친숙하게 이용하는 MZ세대는 명품을 잘 살 뿐만 아니라 팔기도 잘 판다. 새 상품에 프리미엄을 붙여 판매하고 차익을 남기는 경우도 있지만 잠깐 즐기고 되파는 경우도 적잖다. 소유나 재테크 관점에서 접근하기보다 소비와 향유 차원에서 명품을 바라보는 식이다.
당근마켓, 번개장터 등 중고거래 앱을 통해 가방이나 신발을 자주 판매하는 현모(32)씨는 “300만원에 산 가방을 6개월 정도 기분 좋게 들다가 250만원에 팔면 50만원으로 명품 가방을 즐기는 것”이라며 “중고거래를 잘 활용하면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올해도 명품 시장이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한다. 코로나19는 오히려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해외여행이 어려워지자 여행 경비를 명품 소비로 전환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다.
코로나19로 세계 명품 수요가 감소했던 지난해 우리나라 명품 실적은 125억420만 달러(14조9960억원·작년 평균환율 기준)에 이르렀다. 2019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며 독일을 밀어내고 명품 시장 세계 7위에 올랐다. 업계 한 관계자는 “명품은 가격 인상에 대한 해명을 할 필요가 없다. 가격이 곧 정체성이 되기 때문”이라며 “소비자들 또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 때문에 당분간 명품 브랜드의 이런 기조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