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서 20대 남성의 대변인을 자처한 36세 이준석 후보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준석 신드롬’은 젊은 층의 세대교체 열망을 반영하는 걸까. 혹시 2015년 이후 우리 사회를 강타한 페미니즘 ‘리부트’(재부흥)에 반감을 느껴온 젊은 남성의 ‘백래시’(반동)는 아닐까.
4·7 재보궐선거에서 20대 남성은 국민의힘에 몰표를 던졌다. 다른 연령대 남성은 물론 같은 나이대 여성과도 확연히 달랐던 20대 남성의 70% 몰표를 민주당에 대한 심판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민주당의 친페미니즘 성향에 대한 젊은 남성의 집단 반발이라는 일각의 분석은 설득력이 있는 걸까.
젊은 남성들이 정치를 흔들고 있다. 이례적으로 강력하게 분출되는 이들의 정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이들을 움직이는 힘이 안티페미니즘은 아닌지 우려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20대 남성에게서 두드러지게 발견되는 안티페미니즘 정서를 분석할 때 온라인 문화의 영향력을 거론하는 경우가 많다. 남성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에서는 여성혐오, 성차별주의, 안티페미니즘 등이 하위문화처럼 소비돼 왔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여동생이자 고전학자인 도나 저커버그는 “소셜미디어가 여성혐오를 완전히 새로운 수준의 폭력으로 끌어올렸다”고 진단한다. 소셜미디어가 “반페미니스트적 관념을 가진 남성들이 그들의 관점을 그 어느 때보다 널리 퍼뜨릴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그를 안티페미니스트 남성이 모여 있는 미국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인 ‘레드필’(the Redpill)에 대한 연구로 이끌었고, ‘죽은 백인 남자들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라는 책을 쓰게 했다.
미국 소셜미디어 플랫폼인 ‘레딧’(Reddit)의 하위 집단인 레드필은 회원 수가 23만명에 달한다. 여기에는 남성에게 불평등한 법과 규범을 철폐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남권운동가, 비자발적 독신을 뜻하는 ‘인셀’, 여성을 꾀어 성관계를 갖는 기술을 알려주는 ‘픽업 아티스트’, 결혼도 거부하며 여성과 완전히 분리된 채 살아가는 ‘자기 갈 길을 가는 사람들’, 극우 성향의 백인 우월주의 집단 ‘알트라이트’(대안 우파) 등이 모여 있다.
저자는 레드필에서 가장 조회수가 높은 게시물과 가장 영향력 있는 필자들의 글을 중심으로 이들이 공유하는 반페미니즘의 근거와 논리를 살핀다. 특히 레드필 남성들이 고전에 매료되고 고전에서 자신의 젠더 정치학을 찾아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여성은 자기 통제를 할 수 있는 능력이 낮다”(세네카) “여자 같은 남자보다 더 나쁘고 수치스러운 것은 없다”(키케로) “여자라는 파괴적인 종은 인간 남성에게 고통을 안긴다”(헤시오도스) 등에서 볼 수 있듯 대다수 고대 철학자들은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여겼다. 레드필 남성들은 이런 문장들을 인용하면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이론화하고 강화한다.
스토아철학은 레드필 필자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레드필 커뮤니티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이며 ‘명상록’은 레드필 추천 도서다. 스토아철학은 여성과 유색인이 감정적이고 열등하다는 편견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된다.
레드필 이용자들에게 영웅 취급을 받는 스티브 배넌(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참모)이 고전 애호가이며 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인용했다는 사실은 극우와 고전, 안티페미니즘 사이의 연결 고리를 잘 보여준다.
레드필 남성들이 집착하는 주제인 ‘거짓 강간 고발’을 분석한 장도 흥미롭다. 이들은 “모든 공적 강간 고발은 가짜다”라며 여성들이 거짓말로 강간을 고발하는 일은 고대부터 계속됐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그리스 신화에서 히폴리투스와 페드라의 이야기를 가져온다. 왕비 페드라는 의붓아들인 히폴리투스와 사랑에 빠지고, 그에게 거절당하자 남편에게 히폴리투스가 자신을 강간했다고 거짓말한다.
미국 젊은 남성들이 온라인에서 주고받는 여성혐오 담론을 분석한 이 책이 백래시를 돌파할 지침을 제시하는 건 아니다. 대신 지적 권위를 가진 철학이나 인물에 대한 무비판적 태도가 여성혐오의 논리로 이용될 위험성을 섬뜩하게 보여준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