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조국의 시간, 그 후

입력 2021-06-03 04:08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2019년 8월 이후 친구들과, 지인들과의 자리가 조금씩 불편해졌다. 모임이 있을 때마다 논쟁이 벌어졌다. 한쪽은 주로 검찰이 내놓는 논리를, 한쪽은 주로 방송 출연자들이 얘기하는 논리로 맞섰다. 날선 말들이 오고 가기도 했다. 어색해진 몇몇 자리가 있었으나 그래도 대개 마무리는 농담을 하며 웃음으로 끝났다.

2020년 1월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이른바 ‘추·윤 갈등’이 시작됐다. 그때까지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결기가 세다고 해도 장관이 충분히 다독거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5선 의원에다 여당 대표까지 지낸 관록이, 인사권을 틀어쥔 힘이 장관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들과, 지인들과 개혁을 놓고 얘기할 수 있는 자리는 점점 줄었다. 한쪽 끝에서 자기 얘기만 하는 이들이 나타났고, 더 이상 입을 열고 싶어하지 않는 이들이 많아졌다. 다음 약속을 잡기는 더 어려워졌다.

그래도 대부분 총선에서의 투표는 다른 문제로 여겼다. 방송 출연자들이 내놓는 논리를 수긍하지 못했고 심지어 불쾌함을 느꼈던 이들 중 상당수도 여당에 표를 줬다.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절박함이었다. 압도적인 의석을 만들어주면 야당을 설득할 수 있겠지, 민주화세대의 명분으로 산업화세대의 경험까지 충분히 감싸 안으며 개혁을 이룰 수 있겠지 기대했다.

한때 어색했던 모임이 다시 조금씩 편해지는 듯했으나 오래가지는 못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들이 불거졌다. 총선 일주일 후 오거돈 부산시장이 성추행 논란으로 사퇴했다. 7월엔 박원순 서울시장이 숨진 채 발견됐다. ‘추·윤 갈등’은 잦아들지 않고 확대됐다. 한 방송사가 다른 방송사 기자와 총장 측근 검사장의 연루 의혹을 보도하면서 갈등이 번졌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과 총장 측근 검사장이 물리적 충돌을 빚고 부장검사가 병원에 누워있는 모습이 언론에 제공됐다. 실소를 자아냈던 풍경은 유례가 없다던 몇 차례의 지휘권 발동과 반발, 마침내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집행 정지 명령 및 징계 청구로 이어졌다.

여러 차례의 부동산 정책이 쏟아지는 와중에 전세가는 급격히 상승했고 집값도 폭등했다. 소형 주택 보유자는 집값이 올랐지만 옮겨가려 했던 중형 주택 가격이 더 크게 올라 좌절했고, 2주택 욕심이 없는 1주택자들은 늘어난 세금에 반발했다. 무주택자들은 내 집 마련의 꿈 자체가 사라졌다며 주식으로 코인으로 영끌 대상을 바꿨지만 성공한 소수의 투자자와 실패한 다수의 투자자만 남았다. 실패한 정책은 없었다. 정치개혁의 일환이라고 내세우며 만든 당헌을 어느 순간 되돌려 보궐선거에 후보를 냈던 여당엔 정치개혁의 명분도, 당선의 실리도 남아 있지 않다. 여성단체 출신들이 여럿 포진한, 진보를 표방한 여당 일각에서 성비위를 저지른 가해자들을 편들고 피해자를 비아냥대는 믿기 어려운 모습도 확인했다.

어렵사리 쌓아왔던 공동체에 대한, 사회 통합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광경을 지난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지켜봤다. 그러다 보니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세대와 성별과 계층 곳곳의 갈등을 봉합할 수 있는 시스템이, 타협의 의지가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현실 진단과 변화를 위한 문제제기와 토론이 모두 이쪽이냐 저쪽이냐를 묻는 ‘조국의 시간’으로 되돌아가는 경험을 지난 2년간 해왔다. 여당 대표가 내놓은 사과가 조국의 시간을 딛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될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또 다른 소모적 논쟁이 시작되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눈으로 지켜보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일들은 이미 많이 봤는데 말이다.

정승훈 사회부장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