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 신학자인 존 스토트는 자신의 마지막 책의 제목을 ‘급진적 제자도’라고 말했습니다. 영어 표현 ‘Radical’은 ‘급진적’이라는 뜻이지만, 그 내용에는 ‘매우 철저하게’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존 스토트는 수많은 책을 남겼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철저한 제자도’였던 것 같습니다. 요즘처럼 예수님의 제자 됨이 지나치게 ‘교회 중심적인 삶’으로 그려지고 있는 아쉬운 상황에서, 오늘 본문을 통해 급진적 제자도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찾아와 자신이 먼저, 주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는 주님의 입장에서는 반가울 만도 한데, 어쩐지 주님의 반응이 의외였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새들도 자기 집이 있지만, 나는 내 머리 둘 곳도 하나 없다….” 예수님은 이 사람을 향해 참다운 제자도의 삶이 절대 쉽지 않음을 상기시키면서, 진정으로 나와 함께 가겠느냐고 질문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제자의 길은 한마디로 정착하지 못하는 ‘유랑자의 삶’입니다. 우리가 유랑자의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정착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정착한 사람과 유랑자의 삶을 정확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본문이 바로 창세기 11장과 12장입니다.
창세기 11장은 바벨탑을 쌓아 우리가 함께 흩어지지 말자고 서로 말하며, 서로의 뜻을 모으고 손을 굳게 잡고 이 땅에 정착하려는 욕구로 근원지를 만들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12장에서 아브라함은 유랑자의 길을 떠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명령합니다.(1절)
생각해보면 우리는 주님의 제자라고 말은 하면서도 마치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더 가지고 안주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물질뿐만 아니라 미래 계획과 같은 관계들도 정착자의 욕구대로 살아가는 듯합니다.
몇 년 전, 죽은 남편이 사용했던 물건을 정리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정말 이 모든 것을 남겨두고 어쩌면 그렇게도 훌쩍 떠나는구나.’ ‘왜 좀 더 일찍 인생의 짐을 가볍게 하지 못했을까.’ 남편은 개척교회 목회자로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여전히 많은 것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러나 유랑자들은 몸도 마음도 가벼워 쉽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계속되면서 온 세상이 고통 속에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의 제자 된 우리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유랑자로서, 급진적 제자도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코로나로 친언니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 저는 죽음이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모두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삶 속에서 불필요한 욕심을 버리고 초연하면서도 가볍게, 오늘 하루를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진지하게 누려야 합니다. 그럴 때 세상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신앙의 급진성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급진성이 복음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지고 바로 그때 ‘온유한’ 태도로 나누는 ‘복음 증거’가 제대로 전달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박보경 목사(장로회신학대 선교학과 교수·한국얌스펠로십 대표)
◇박보경 목사는 20여년간 장로회신학대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016년부터 세계선교학회의 부회장으로 섬기고 있으며, 최근 한국 선교학의 세계화를 위해 한국얌스펠로십(koreaiamsfellowship.com)을 설립해 세계교회를 섬길 차세대 선교학자를 양성 중입니다.
●이 설교는 장애인을 위해 사회적 기업 ‘샤프에스이’ 소속 지적 장애인 4명이 필자의 원고를 쉽게 고쳐 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