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최숙현’ 없도록… 직장 선수 평가 기준 바뀐다

입력 2021-06-02 04:06

심석희, 고 최숙현 사건 등 수면 위로 드러난 체육계 병폐를 막기 위해 지자체 체육팀과 기업 실업팀에 적용되는 새 기준이 공개됐다. 성과지상주의를 완화하고 이들이 다른 부문에서도 직업인으로서 노동권을 보장받도록 한 내용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는 1일 서울 중구 LW컨벤션센터에서 직장운동경기부 표준 운영규정을 발표하고 토론회를 열었다. 해당 기준은 9일부터 시행되는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에 마련하도록 명시돼 있으며 함께 적용될 종목별 새 표준계약서를 보완한다. 새 선수·지도자 표준평가기준도 발표됐다.

규정안이 적용되는 것은 프로구단 외에 지자체나 공공기관, 기업의 ‘직장운동경기부’ 선수와 지도자들이다. 이들은 명목상 해당 기관의 직원으로서 ‘아마추어’ 자격 선수다. 그러나 성과를 중시하는 국내 엘리트 체육의 특성상 성적에 따라 소속팀이나 계약 기간, 신분이 결정되는 등 사실상 프로와 다름없는 신분이다.

표준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직장운동경기부협의회’다. 구성원에 직장운동경기부 책임자를 비롯해 외부 인권전문가, 선수관계자를 포함하게 했다. 선수들이 명목상으로만 해당 지자체나 기업의 직원일 뿐, 실제로는 노조에 가입하지 못하기에 인권 침해 사례가 일어나도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해 만든 조직이다.

세부적으로는 사건마다 드러났던 문제점이 반영됐다. 최숙현 사건 주요 가해자인 ‘팀닥터’ 안모씨처럼 자격미달자가 멋대로 팀에 채용될 수 없게 했다. 성폭력·학교폭력 전력자도 채용 못 하게 했다. 심석희 사건 때는 대한체육회 고위 관계자가 가해자 조재범 코치의 복귀를 약속했다는 보도가 나와 논란이 됐다.

근무조건 역시 근로기준법에 상응하도록 규정했다. 해고 시 사유 서면 통지 등 법 절차를 따르게 했고 계약 시에도 기간과 연봉 등을 미리 알리게 했다. 주 52시간 근무를 기준 삼아 추가 훈련 시 휴가·수당을 지급하게 명시했다. 합숙소 생활은 필요시에만 단체장 승인을 받아 명하도록 하고 이외는 선수 선택에 맡겼다.

내부 성과평가 기준도 크게 바뀐다. 선수 성과평가에서 대회 성적 비중은 현행 평균 약 77%인 것을 50%선으로 낮춘다. 지난 대회 대비 성적을 10%로 하고 나머지 40%에 성장가능성, 선수역량, 팀 발전기여도 등을 종합한다. 역량 평가에는 지도자와 동료의 평가도 반영된다. ‘성과평가위원회’를 새로 설치해 선수의 연봉등급과 재계약 여부를 해당부서에 권고하도록 한다.

지도자가 기량이 출중한 선수에게 ‘몰아주기’를 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도 있다. 지도자 실적평가 시 팀 전체의 성적 평균이 적용된다. 지도자가 한 선수뿐 아니라 팀 전체의 성적을 향상하게 한 조치다. 최숙현 사건에선 경주시청 김규봉 감독이 트라이애슬론 장윤정의 성적을 위해 최숙현 등 다른 선수를 희생시켰다(국민일보 2020년 7월 22일자 10면 참조).

현장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농구선수 출신 교육가이자 체육행정가인 한종우 오산시 체육회 사무국장은 “이번 표준규정은 만시지탄”이라면서 “(최종적으로는) 지역에서 직접 선수를 육성하고 지역 팀과 안정적으로 다년 계약을 맺은 선수가 지역에 재능기부까지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