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나 잡지” “이런다고 낳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정부의 인구 정책 홍보를 위한 육아 관련 이벤트에 고단한 육아에 지친 이들의 분노 댓글이 쇄도했다. 2만명이 넘게 참가했는데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여론을 조성해 보려는 당초 취지와 달리 부정적인 댓글이 적지않다. 정부가 즉흥적 이벤트에 세금을 쓸 게 아니라 애 키우기 힘든 현실에 대한 해법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체부는 지난 20일부터 30일까지 인스타그램 ‘육아맞집’ 계정을 통해 육아에 대한 생각을 여섯 글자 댓글로 달아 달라는 ‘여섯 글자로 말해요’ 이벤트를 진행했다. 문체부는 오는 7~16일 같은 이벤트를 재차 열 계획이다. 당첨자에게는 모바일 상품권 1만원권(100명), 20만원권(6명)을 각각 지급하기로 했다. 이벤트 시작 이후 참여율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11일간 달린 댓글은 모두 2만1440개에 이른다. 1일 문체부 관계자는 “(지금까지 개최한 이벤트 중) 이렇게 많이 호응한 건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번 이벤트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의 인구 정책 홍보를 목적으로 기획됐다. ‘함께 돌본다’는 의미의 육아맞집을 소통 창구로 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저출산 문제 해결이 이벤트의 지향점인 것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저출산 인식 개선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여론은 기획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발하면서도 씁쓸한 댓글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집값이나 잡지’ ‘이런다고 낳냐’ 외에 ‘인내심 테스트’ ‘위대한 RPG’(롤플레이잉게임·게임에 소비하는 시간이 매우 많음) ‘철인오종경기’ ‘흰머리 생성기’ 등 육아에 지친 부부들의 하소연성 풍자 댓글이 많다. 다만 ‘몰랐었던 행복’이나 ‘사랑의 도전장’처럼 긍정적인 댓글들도 눈에 띄었다. 육아를 긍정적 측면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지만 반면에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를 토로하는 부부들도 많았던 것이다.
사회상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분기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0.88명에 그쳤다. 1분기 기준으로는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81년 이래 최저치다. 코로나19 상황에다 집값 급등 등 갈수록 현실이 팍팍해지면서 혼인 건수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 저출산 상황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도저히 육아에 집중하기 힘든 상황이다 보니 이벤트 자체가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를 홍보하는 창구로 탈바꿈한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벤트를 기획한 문체부의 육아에 대한 인식도 논란 거리다. 문체부 관계자는 “올해 주제는 ‘가족 맞돌봄’이다. 육아가 어렵지만 가족 구성원들이 모두 도와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이벤트의 배경에서 홀로 육아를 해야 하는 한부모 가정이나 비혼모, 비혼부에 대한 배려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벤트 최종 당첨자는 3일 발표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이벤트보다 저출산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들이) 안정적이어야 아이를 낳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니냐. 청년들이 얼마나 불안정하게 살고 있는가를 저출산 대책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