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여성 부사관이 성추행 피해 신고 후 상관들의 회유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 엄정한 군기가 생명이어야 할 군에서 성범죄가 벌어졌다는 것도 어처구니없지만 이를 조직적으로 덮으려 했다니 더더욱 경악할 노릇이다.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성범죄를 은폐하려 한단 말인가. 유족에 따르면 지난 3월 초 공군 모 부대에서 여성 부사관이 선임인 남성 부사관에 의해 억지로 회식 자리에 불려 나간 뒤 돌아오는 차량에서 강제추행을 당했다. 문제는 사건 당일에 피해 사실을 부대에 알렸지만 즉각적인 가해·피해자 분리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부대 상관들의 집요한 회유가 있었다는 게 유족 측 주장이다. 심지어 군인인 여성 부사관의 약혼자에게까지 연락해 사건 무마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여성 부사관은 사건 이틀 뒤 부대를 옮겨달라면서 청원휴가를 떠나 지난달 18일 새 부대로 출근했지만 결국 나흘 뒤 관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군 당국은 회식 자리가 생긴 것부터 부사관이 사망하기까지 전 과정을 철저히 수사해 가해자를 비롯한 관련자들을 일벌백계 차원에서 엄벌에 처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로 회식이 금지됐는데도 회식을 한 이유와 성추행 뒤 피해자 보호 프로그램이 가동되지 않은 배경을 파헤쳐야 한다. 무엇보다 조직적인 회유와 2차 가해가 있었다는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 해당 부사관이 전에도 성추행을 당했다고 유족들이 호소했는데, 당시에도 사건 무마 시도가 있었던 게 아닌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부사관이 억울한 피해자인데 새 부대에서 ‘관심 병사’와 같은 취급을 당했다는 유족 측 주장도 그냥 넘길 사안이 아니다.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얼마나 억울했으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장면을 가족들이 보라고 동영상으로 남겨놓았겠는가.
군 부실 급식 사태에 온 국민이 공분하고 있는 마당에 이런 일까지 벌어지니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깡그리 무너지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욱 국방부 장관이 1일 사안이 엄중하니 특별수사단을 꾸려서라도 신속하고 엄정하게 사실을 규명하라고 지시했지만 늦어도 한참 늦은 지시다. 성추행 사건이 생긴 지 근 3개월, 부사관이 숨진 지 열흘이 지나도록 관련 사실이 아직도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이유가 뭔지 따지지 않을 수 없다. 근래 군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끊이지 않는데, 군 최고지휘부도 책임을 지는 게 마땅하다.
[사설] 女부사관 성추행 은폐 사건, 철저 수사 후 엄중 문책하라
입력 2021-06-02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