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때리지 않고 키울 수 있을까

입력 2021-06-02 04:03

“너 죽이고 감방 간다.” “너 쫓아가면 쑤셔버린다.”

영화 속 조직폭력배의 대사 같은 말들을, 40대 엄마는 10대 딸에게 퍼부었다. 엄마는 밥주걱과 샌들 굽으로 딸을 때리기도 했다고 한다. 법원은 1일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 혐의로 엄마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지난 1월 민법 915조 ‘친권자의 징계권 조항’이 사라지면서 한국은 명실상부한 아동 체벌 금지 국가가 됐건만, 제도의 진전이 무색할 정도로 여전히 하루가 멀다고 끔찍한 아동학대 관련 뉴스가 쏟아진다. 많은 부모가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한국의 부모들은 때리지 않고 아이를 잘 키울 준비가 정말 됐을까.

최근 아동학대 관련 세미나에서 만난 이상균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학대 판결문을 읽을 때마다 아이를 키우는 처지에서 뜨끔해질 때가 많다고 했다. 판결문에 등장한 학대 사례가 “나가 죽어”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너 같은 자식 필요 없어”라며 집 밖 아파트 복도에 세워 두기와 같이 흔하고 익숙해서란다. 보통의 부모들이 한 번쯤 해봤거나 혹은 순간적으로 떠올려봤던 행동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초기에는 사소하게 소리 지르는 것으로 시작해 그게 반복이 되고, 감정의 상승 효과가 일어나 습관이 되면서 극단적으로 치닫게 된다는 것이다. ‘독박 육아’ 등으로 양육 스트레스가 높은 한국 사회에서 이런 위험은 사실 모든 부모에게 존재한다. 그래서 곽 교수는 “너무 화가 나서 아이를 때릴 것 같은 순간,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담해주는 24시간 전화 서비스 같은 걸 제공하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몇 번씩 찾아온다. 훈육과 학대의 갈림길이었을지 모를 순간들일 게다. 아이를 지켜보다 너무 답답해 머리 한 대 쥐어박거나 등짝을 내리친 적 있지 않았나. 내가 화났다는 걸 티 내기 위해 물건을 획 집어 던지거나 문을 쾅 닫았던 경험은? 아이가 미운 나머지 “너만 없었더라면” 하는 말을 내뱉었다 후회한 적은 또 어떤가. 어쩌면 법정 구속된 40대 엄마도 처음부터 저런 험악한 말을 쏟아내진 않았을 거다. 아이의 행동에 화가 나 말이든 손찌검이든 폭력적으로 감정을 표출했던 첫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때 그 행동이 곧 아동학대의 시작이란 걸 깨달았더라면, 누군가 그 순간을 말려줬더라면 어땠을까.

안타깝게도 아이들의 이름을 딴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아동학대를 근절하기 위한 노력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등 정부 부처는 지난 31일 36개 기관 및 단체들과 함께 ‘아동학대 없는 세상을 위한 공동실천선언문’을 선포했다. 부모의 자녀 체벌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작동했던 민법 915조가 삭제된 올해를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대대적인 인식 개선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했다.

이를 위한 부모 교육부터 시작해서 해야 할 일이 많다. 그중에서도 학대의 첫 시작일지 모를 그 순간을 막는 데 도움이 되는 지원책이 있으면 좋겠다. 보건복지상담 전화 ‘129’를 아동학대 상담 전화로 운영하고 있다기에 전화를 걸어봤다. 1번부터 항목 안내를 듣는데 “보육·아동 출산은 3번, 노인·아동학대는 6번…”, 이용하기가 쉽진 않을 것 같다. 지금 부모로서 이런 행동을 해도 괜찮은 것인지 아닌지 물어보고 답을 들을 수 있는 번호를 하나 따로 만들어주면 어떨까. 변화는 거창한 것보다 작은 데서부터 시작될 때가 많다.

김나래 온라인뉴스부장 narae@kmib.co.kr